[단독] ‘거꾸로 예보’…소액 탕감 기조에도 파산 저축銀 대출자엔 高利

입력 2017-10-23 19:12 수정 2017-10-23 21:58

A씨는 2003년 6월 한 저축은행에서 당시 최고 이자율이었던 연 69%로 220만원을 대출받았다. 생활비로 쓰고 금방 갚을 생각이었지만 남편이 직장을 잃고 소득이 끊기며 연체가 시작됐다. 5년 후 저축은행이 파산했고, A씨의 채권자는 예금보험공사로 바뀌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이자율은 조금씩 낮아졌지만 연체는 계속됐고 어느덧 이자는 원금(220만원)의 5배인 1100만원까지 불었다.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금보험공사가 가지고 있는 10년 이상 장기연체 특수채권을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말 기준 예보의 채권 원리금 11조8000여억원 가운데 이자가 9조3000억원(80.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보는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이 파산하면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채권 등의 자산으로 파산재단을 구성한다. 파산재단에서 대출채권 회수를 못한 부분은 정리금융공사(KR&C)로 넘겨 회수 작업을 계속한다. 회수한 돈은 파산 금융기관 예금자와 주주들에게 돌려준다.

문제는 낮지 않은 연체이자율이다. KR&C가 보유한 10년 이상 특수채권의 평균 이자율은 18.2%에 달했다. KR&C의 연체이자율은 2004년 이전에는 18∼25%,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18%였다. 2015년부터는 12%까지 내려왔지만 채무자들은 예보로 채권자가 바뀐 뒤에도 계속 적지 않은 이자 부담을 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소액장기연체채권 소각 기조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극적인 채무 조정과 이자 감면을 통해 장기적으로 회수율을 더 높이는 방안과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3일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취약차주들이 여기(빚의 나락)서 벗어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결국 소득주도성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10개 금융공기업이 보유한 10년 이상 소액장기연체채권 3조2000억원 가운데 예보 보유 물량은 2조3000억원(약 71%)에 달한다.

예보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고금리 이자를 부담한 뒤 넘어온 채권이 많기 때문에 이자 규모가 큰 것”이라며 “개인 채무자 대상 채무 탕감도 확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제 의원은 “연 50%가 넘는 고금리 채권을 적용받던 채무자들에게 10년이 넘은 지금도 이자를 부담시키는 것은 약탈적”이라며 “장기적으로 회수율을 더 높일 수 있는 채무조정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권은 ‘공통 빚 탕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르면 연말부터 취약계층 대상 빚 탕감이 시행된다. 우리은행은 가계여신 연체 가산금리를 7∼8%에서 3∼5%로 대폭 낮추고, 2093억원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일괄 소각했고 앞으로는 매월 소각할 방침이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