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그 후 3년6개월. 우린 무얼 기억하고 무얼 망각했을까. 무엇을 얻고 또 놓쳤을까. 우리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그 사건을 젊은 작가들은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미술 언어로 풀어냈을까.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대안공간 아트 스페이스 풀의 기획전 ‘녹는 바다’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이성희(39) 대표가 기획한 전시에는 우연처럼 김지영(30), 임영주(35), 김영은(37) 등 30대 여성작가들이 초대됐다.
개막일인 지난 17일 서슬 퍼렇거나 목청 높은 작품을 예상하고 찾아간 전시장은 의외로 차분했다. 옛 가정집 거실을 개조한 전시공간은 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 색조의 작은 회화들이 격자처럼 진열돼 있는 걸 빼고는 얼핏 비어있다. 비어 있는 공간은 소리들이 채우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가장 가시적인 작업은 김지영의 작품 ‘파랑 연작’이다. 인도교 폭파,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등 세월호 사건과 유사한 과거의 재난들을 풍경화처럼 병치시켰다. 집어삼킬 듯한 파란색 톤의 일사불란한 풍경은 그것이 구조적 문제임을 환기시키며 어느덧 국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임영주는 ‘일기예보’를 소재로 영상을 내놨다. ‘대체로 맑음’이라는 화면 속 작품 제목 글씨가 뜬금없다. 하지만 이는 세월호 사건 전날(2014년 4월 15일)의 일기예보다. 임 작가는 ‘기상(氣象)’이라는 글자 자체가 주는 주술적 이미지, 수퍼문 현상 등 여러 일기예보적 요소를 짜깁기해 데이터 해석의 실패뿐 아니라 미디어가 조장하는 왜곡, 이에 따른 미신과 불합리 등을 짚는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그러하지 않았느냐 묻는 것 같다.
김영은의 사운드 작품 ‘소리의 살’은 아주 친숙한 곡인 ‘생일 축하합니다’ 허밍을 낯설게 되풀이시킨다. 처음에는 은은하게, 그러나 점점 여러 사람이 가세하며 중첩되는 목소리. 홍콩의 우산혁명 때 우연한 계기로 시위 곡으로 쓰이기 시작한 노래다. 사적인 노래가 공적인 방식으로 맥락이 전이된 현상을 지적하는데, 우리에게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획자인 이 대표는 “역사의 반복을 피하기 위한 고민을 예술적 측면에서 시도해보자는 취지”라며 “분노의 시간을 지나 응시의 결이 작품들 속에 다층적으로 배어 있다”라고 말했다. 11월 17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젊은 여성 미술작가들 기억 속의 세월호는
입력 2017-10-24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