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헌 길 튼 아베… 악화된 외교환경에 냉철한 대응을

입력 2017-10-23 17:43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의석을 합칠 경우 465석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참의원은 이미 3분의 2를 확보하고 있다. 아베 총리 개인적으론 사학 스캔들 충격에서 벗어나 정국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게 됐다. 최장 2021년까지 장기 집권도 가능해졌다. ‘아베 1인 독주’ 체제가 더욱 강화된 셈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이다. 아베 총리는 23일 여야는 물론 국민과 함께 폭넓게 논의하겠다며 개헌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실상 선거 승리 1등 이슈였던 북핵 리스크로 일정 정도 명분도 확보했다. 방향은 이렇다.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3항을 신설해 군사적 기능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경우에 따라선 자위대가 북한 도발을 빌미로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간여하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다. 북한을 겨냥한 독자적인 군사 옵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수순은 군사력 강화다. 방어무기 위주인 자위대가 공격무기를 갖춰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자민당의 제언이 이미 아베 총리에게 제출돼 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과 북한 도발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북핵 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일 관계는 당장 큰 변화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론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 아베 총리로선 최대 지지 세력인 극우보수층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과거사를 부인하는 교과서 확대 등 우경화 작업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소녀상 철거 압박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 문재인정부로선 더욱 힘이 세진 아베 총리를 상대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강력한 2기 시진핑 중국 체제도 곧 탄생한다. 돌발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3대 스트롱맨에게 둘러싸인 어려운 외교 환경에 직면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익을 우선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최우선돼야 한다. 아베 총리의 강공 드라이브에 휘둘려선 안 된다. 맞대응하기보다는 기존 원칙대로 과거사와 안보·경제 현안을 철저히 분리해 관리하는 방향이 올바르다. 다만 군국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에 대해선 일본 국내와 국제사회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하는 외교 전술이 필요하다. 미·일 지도자 간의 친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우리 역시 미국과의 공조와 신뢰를 다지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국론 결집을 위한 노력도 절실하다. 다음 달 5일부터 시작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순방이 문재인정부의 외교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철저하고 정교한 준비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