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하 <8> “자네 사는 모습이 귀해서…” 통장 쥐어준 이웃 어르신

입력 2017-10-25 00:00
교회 개척에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성남 샬롬교회 주일예배 모습. 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가 필자.

옥상에서 네 식구가 한 방에 기거하면서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 가족은 강원도 산골에서 오랫동안 불편하고 힘겨운 생활을 함께해온 터였으므로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해 여름의 더위와 겨울 추위는 하도 혹독해 기억에 남는다.

한여름엔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너무 더울 때는 얼음덩어리를 발바닥에 놓고 물수건으로 목을 축이며 견뎠다. 또 겨울엔 너무 추워 두툼한 옷을 몇 개 껴입고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작고 허름하더라도 사택이 있어 아이들에게 공부방도 내주고, 더위와 추위로부터 조금은 비켜 생활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때가 되면 그런 환경을 주십사’라고 기도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1년 쯤 됐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자 반가운 분을 보내주셨다. 강원도 삼척에 있을 때 교회 건너편에 사시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와 사셨는데 일제강점기 때 도쿄 유학까지 다녀오셔서인지 말씀하실 때도 배움의 기품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마찬가지지만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교회에 나오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고 기도하다 보니 정이 더 갔다. 할아버지의 일을 자주 거들었다. 풀을 베고, 염소우리를 짓고, 보일러도 고쳐드렸다.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마치 할아버지 아들 같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가 출석하던 교회에 나오셨다. 예수를 믿게 된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내게 “이 좋은 예수를 내가 왜 이제야 믿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분은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셨고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6년여 시간이 흘러 찾아오신 것이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어 여기저기 자네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왔네.”

할아버지와 그동안 함께 한 일들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회개척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방문은 그 힘겨운 시간을 위로하시듯 하나님이 보낸 천사 같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질 때 할아버지는 내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었다. 은행 통장과 도장이었다.

“이게 뭡니까?”

“자네들 살아가는 모습이 하도 귀해 내가 이거라도 주고 싶네. 우리 아이들이 용돈 하라며 준 건데 내가 차곡차곡 모았어. 가만 보니 오늘을 위해 그리 모아온 것 같네. 옥상에다 스티로폼 깔고 네 식구가 얼마나 불편했겠어. 내 눈에 선하네. 이 돈이 도움이 되면 좋겠네.”

통장에는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미 사양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굳게 하신 뒤였다. 그 고마운 돈으로 우리는 방 두 개가 있는 반지하방을 사택으로 구해 이사했다. 1년 만의 기도응답이었고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감사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 아내는 그 후로도 시간을 내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 성경공부를 했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30)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