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야 대표들을 4번 만났다. 취임식 당일인 5월 10일 오전 야4당 지도부를 직접 찾았다. 이어 5월 19일, 7월 19일, 9월 27일 여야 당 대표나 원내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두 달에 한 번 꼴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반년도 되지 않아 여야 대표들을 네 번이나 만난 것은 국회 협조에 공을 들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 반 재임 기간 야당 대표를 세 번 만났다. 그런데 한국당 대표를 만난 것은 두 번이다. 문 대통령이 5월 10일 야당 지도부를 방문할 당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한국당 당사였다. 정우택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만났다. 정 원내대표는 5월 19일 청와대 초청에도 응했다. 하지만 이후 두 번의 회동에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불참했다.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 회동 사진에서 사라진 지 5개월이 넘었다.
홍 대표는 왜 청와대 회동에 응하지 않았을까. 그는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7월에도 그랬고 9월에도 그랬다. 홍 대표나 한국당 지도부의 말을 종합하면 짐작 가는 이유가 있다. 당분간 한국당의 전략은 ‘기다려보기’ 정도로 보인다. ‘강한 야당’(여당에서 보기엔 사사건건 반대하는 야당)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고, 그때쯤 한국당에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잘 될까 싶은 전략인데, 어쨌든 그런 모양이다. 21대 총선이 2년 반이나 남았으니 시간도 많다. 한국당 최고위원은 “한국당이 여권에 협조하면 제2의 국민의당이 돼 버린다. 우리 지지층이 바라는 게 아니다. 정치구도상 우리는 가장 오른쪽에서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홍 대표와의 회동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불러도 오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라는 분위기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동하더라도 성과가 나올까 싶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면 성과를 기대한다. 대통령은 야당의 숙원 사업을 들어주고, 야당은 입법에 협조하는 그림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3김 시대 이후인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영수회담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 요구를 들어주기도 쉽지 않고, 의원들 장악력이 떨어지는 야당 대표도 통 크게 합의할 내용이 별로 없었다.
한국당 입지도 애매하다. 제1야당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여당이었다. 여권이 진행 중인 적폐청산 작업 대상에 직간접적으로 걸쳐 있다. 홍 대표와의 회동에 공을 들일 이유가 없는 셈이다. 집권 초 여권이 설계한 그림은 한국당 포위구도였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과 사안별로 협조하고, 한국당을 배제하는 그림이다. 입법이 여의치 않으면 하위 체계인 시행령 같은 행정명령으로 급한 불을 끄자는 공감대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5개월간 문재인정부는 입법보다는 대통령 지시사항, 각 부처의 행정력을 동원해 현안들을 처리해왔다.
이런 상태는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는 갈등이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곳이다. 여권이 한국당의 협조를 얻지 않는다면 개혁에 성공하기 쉽지 않다. 복지 정책과 부동산 정책, 일자리 정책 모두가 입법으로 마무리돼야 하는 사안들이다. 탈원전 정책도 결국 정부와 국회가 최종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문 대통령이 홍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당을 배제한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이념과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제1야당을 배제한 정치가 가능할까 싶다. 당장 결과물이 없더라도 문 대통령은 홍 대표와 자주 만나야 한다. 홍 대표도 5당 대표 회동이 아닌 1대 1 회동 형식이라면 응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참모들은 “다른 당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하지만, 부차적인 문제다. 꾸준히 만나야 나중에 얘깃거리라도 생긴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
[돋을새김-남도영] 문 대통령은 홍 대표 만나야
입력 2017-10-23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