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저스틴 토머스(24·미국)였다. 토머스가 제주의 매서운 바람을 뚫고 한국에서 처음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CJ컵 초대 챔피언이 됐다.
토머스는 22일 제주 서귀포 나인브릿지 골프클럽(파72·7196야드)에서 끝난 대회 마지막라운드에서 이븐파, 최종합계 9언더파로 마크 레시먼(호주)과 동률을 이뤘다. 토머스는 2차 연장에서 버디를 기록, 보기에 그친 레시먼을 제치고 올 시즌 PGA 투어 첫 우승이자 통산 7승째를 거뒀다.
18홀을 돌아도 승부를 결정내지 못한 두 선수는 연장에 접어들었다. 결국 2차 연장에서 레시먼이 친 두 번째 샷은 물에 빠졌고, 토머스가 친 공은 그린 근처에 올라오면서 승부가 갈렸다. 토머스는 “초대 챔피언이 돼 영광”이라며 “(주최측이) 트로피에 한글로 적힌 내 이름을 금색으로 표시해 줬다. 덕분에 내 이름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외울 수 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대회 최대 변수는 바람이었다. 1라운드에서 시속 10㎞ 안팎이었던 바람은 2라운드에는 시속 30㎞, 3·4라운드에는 시속 40㎞나 됐다. 이 때문에 대회 첫날 50명이 언더파였지만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언더파가 각각 21명, 10명으로 줄었다. 마지막라운드에서도 언더파는 16명에 불과했다. 제이슨 데이(호주)는 “계속해서 바람 방향이 바뀐다.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바람”이라고 했다. 안병훈도 “티박스에서 준비할 때와 칠 때 바람 방향이 달라질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토머스 역시 제주 바람과 사투를 벌였다. 1라운드에서 9언더파를 친 후 “코스가 쉬운 편이다. 타수를 더 줄이지 못해 아쉽다”며 의기양양했던 토머스는 이후 2라운드에서 2오버파를 치는 등 바람의 심술에 쩔쩔 맸다. 토머스는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1라운드 끝나고 나서 이렇게 어려운 경기가 되리라고는 예측 못했다”며 “1라운드 스코어가 우승 스코어가 된 것은 흥미롭고 괴상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머스는 바람을 지혜롭게 이용하기도 했다. 토머스는 3라운드 12번홀(파5)에서 뒷바람을 이용해 무려 461야드(422m)라는 믿기 힘든 장타를 날렸다. 드라이버로 티샷한 볼이 카트 도로를 맞아 크게 한 번 튀긴 뒤 페어웨이로 들어와 한참 구르면서 나온 기록이다. 이후 버디를 낚았다. 이 장타는 PGA 투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대회엔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러 온 갤러리로 나흘 연속 넘쳐났다. 섬이라는 지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라운드에 1만3500여명이 몰리는 등 나흘 동안 총 3만5000여명의 갤러리가 입장했다. 다만 일부 갤러리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옥의 티였다. 마지막라운드에선 11번홀에서 토머스가 티샷한 공이 러프에 떨어지자 갤러리가 주워서 던져주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1차 연장에서도 레시먼이 티샷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에 방해 받아 공이 러프를 넘어 도로까지 굴러갔다.
한편 지은희는 이날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7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했다.
지은희는 2009년 7월 US여자오픈 이후 8년 3개월 만에 투어 통산 3승째를 수확했다. 이번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15승째를 차지하며 2015년 한 시즌 최다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서귀포=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제주 바람’은 토머스 편이었다
입력 2017-10-22 18:59 수정 2017-10-22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