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특수전담 부장검사들의 워크숍에서는 “구속제도만 없으면 검사 생활이 참 괜찮겠다 싶은 때도 있다”는 농반진반의 말이 나왔다. 영장 재판 결과만으로 수사의 성패를 섣불리 평가하는 분위기 때문에 영장 청구 단계에서 부담이 커지더라는 토로였다. 검찰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진행할 때 사회 각계로부터 “불구속 원칙을 지켜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피의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수사 제동’ ‘무리한 수사’라는 표현과 함께 언론에 소개된다.
검찰은 “영장 발부·기각이 곧 수사의 성패는 아니다”면서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 왔다. 수사가 부실한 경우도 있겠지만 때론 법원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항변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기각되자 즉각 “법원 판단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2006년 대검 중앙수사부의 론스타 수사 당시에는 체포·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되자 검찰이 기각된 것과 똑같은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한 일도 있다.
구속영장 하나하나에 민감해하기는 ‘도장을 찍는’ 법원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기록으로 인권 제한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영장전담판사는 법원 내에서 스트레스가 큰 보직으로 꼽힌다. 수사의 밀행성을 깨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내용을 알려가며 따로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아는 이들은 그의 영장전담판사 시절을 떠올리며 인품을 칭찬한다. 김 대법원장은 2007년 서울북부지법에서 영장전담을 맡았는데, 사실 후배 기수가 맡을 고된 일이었음에도 불평 없이 묵묵히 일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다.
요즘엔 영장전담판사가 고심 끝에 겨우 기각과 발부를 결정하면 SNS 공간에서 신상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익명의 비난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이 일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을 비교하며 “죄를 지으려면 이 도시에 가야 하겠다”고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어려운 재판이 여럿이지만 그중 영장 재판이 정말 어렵다”고 말한 대법관도 있었다. 20일 서울고법 등의 국정감사에서도 “추 전 국장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과연 정의냐”는 투의 질의가 많았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발부되는 비중은 해마다 80% 안팎으로 집계된다. 전체 사건접수 인원 중 구속에 이르는 인원의 비중(구속점유율)은 1%를 조금 넘는다. 큰 비중이라 보기 어렵지만 “불필요한 구속을 줄이는 것이 무죄추정원칙과 신체의 자유에 관한 헌법 이념에 부합한다”는 법조계의 문제의식은 끊임없다. 형사소송법이 1954년 제정 뒤 20차례 넘게 크고 작은 개정을 거치며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수사기관 출석 보장, 증거인멸 방지, 수사 방해 제거, 형벌의 집행 확보 등 구속의 의의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검찰은 한 차례 기각된 추 전 국장과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추 전 국장의 경우 그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 공무원·민간인을 사찰하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만 비선으로 보고를 한 정황이 새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글=이경원 황인호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구속제도만 없으면 검사 할만하다”… 구속영장의 풍경
입력 2017-10-21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