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사회’ 공론조사 2탄은… 4대강 복원? 국민연금?

입력 2017-10-21 05:02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문제 이후 공론조사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와 4대강 복원 문제 등이 거론된다.

정부는 이르면 연내에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를 재출범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10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는 20개월의 활동 끝에 “2055년 전후에 영구처분시설이 필요하다”는 권고안을 냈다. 정부는 권고안을 수용해 지난해 11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지만 현재 소관 상임위(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선언한 탈원전 정책에 따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발생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한 새로운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권 내에선 대표적 ‘환경 적폐’로 지목돼온 4대강 사업 복원 문제도 공론조사에 부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0일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는 신고리 원전처럼 공론조사 방식으로 정책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며 “4대강의 전면적 복원 문제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여당 중진 의원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도 4대강의 환경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4대강 보를 모두 철거하는 방안을 놓고 공론화위를 구성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다.

이밖에도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조정이나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한 헌법 개정 문제 등도 공론조사를 적용할 수 있는 사안으로 거론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역시 두 수사기관 간 논의가 평행선만 달릴 경우 공론조사에 부쳐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외국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공론조사를 통해 사회갈등을 해소해 왔다. 대표적 사례는 1996년 미국 텍사스주의 발전소 건립 문제다. 당시 주정부는 주민 대표들에게 새로운 발전소의 발전 방식을 석탄화력발전소, 천연가스발전소, 재생에너지발전소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전문가 예상과 달리 주민들은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을 선택하면서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에는 개헌 문제(몽골 아일랜드 아이슬란드)나 원주민 화해정책(호주) 등 사회적 갈등 소지가 있는 현안을 놓고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공론조사 방식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숙의제도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순기능은 인정하지만, 자칫 국회의 역할을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여당 재선 의원은 “야당 의원 중에서도 이번 공론화위 조사 방식이 예상외로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할 수 있는 현안마저도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면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