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사립유치원 갈등… 또 유치원 추첨 대란 불보듯
입력 2017-10-21 05:01
유치원 온라인 지원·선발 시스템 ‘처음학교로’가 올해 처음 전국으로 확대되지만 사립유치원의 참여 거부로 반쪽짜리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교육부와 사립유치원 간 해묵은 갈등으로 학부모들의 밤샘 줄서기 등 유치원 추첨 대란은 올해도 재현될 전망이다.
국민일보가 20일 17개 시·도교육청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 지역에서 사립유치원 예상 참여율이 한 자릿수(잠정치)에 머물러 있었다. 대전의 경우 사립유치원 172곳 중 4곳만 처음학교로 관련 연수에 참석했다. 지난해 온라인 지원을 시범 실시했던 충북교육청도 사립유치원 96곳 중 3곳만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에선 사립유치원 중 참여하겠다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나머지 지역은 사립유치원의 참여 여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인천·부산·세종 등 교육청은 “현재로서는 얼마나 참여할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처음학교로는 지난해 교육부가 학부모들의 유치원 입소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세종·충북 등 3개 교육청과 함께 공동 개발한 시스템이다. 온라인으로 원하는 유치원을 신청하고, 추첨 역시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시범운영 결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서울의 경우 사립유치원 677곳 중 17곳(2.5%)만 참여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지원이 전국으로 확대돼 학부모들은 더 혼란스럽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A씨(30·여)는 “유치원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 시스템 참여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가까운 곳에 국·공립유치원이 없어서 사립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참여하는 곳이 없어서 올해도 유치원 추첨 때 휴가를 내고 줄을 설 계획”이라고 했다. 지역 ‘맘카페’에도 고민을 토로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부산 지역의 한 학부모는 “올해 우리 지역에도 인터넷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좋아했는데 사립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부모들이 다들 처음학교로에 우선 지원해 국·공립 경쟁률만 높아지고 이후에는 다시 발품을 팔아 사립유치원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시스템 시행 전까지 사립유치원 참여를 최대한 독려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우수유치원 선정 시 가산점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약속했지만 사립유치원은 “국·공립 위주의 정책에 들러리를 서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기옥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서울지회장은 “국·공립유치원의 경우 국가에서 예산을 더 지원해 경쟁률이 계속해서 높아지는데 사립은 미달되는 곳도 많다”며 “학부모가 국·공립과 사립유치원을 차별 없이 선택할 수 있을 때 (시스템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국가가 설치·운영하는 유치원과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지만 (유아교육) 생태계에서 문을 닫는 업체에는 적절한 보상을 해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글=임주언 이형민 이택현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