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과로사회”라며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얘기했다. 문 대통령은 과로사회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촉구하면서 최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정상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대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에서 토·일요일 노동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주 68시간 노동을 허용한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정부가 단독으로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발언은 단순한 선언 이상의 무게를 가지게 됐다.
한국이 과로사회라는 건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만큼이나 명확하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64시간과 격차가 크다.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경우는 한국과 멕시코, 그리스 정도다. 대다수 회원국은 늦어도 1990년대에 들어서기 전 2000시간 아래로 줄였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4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시절 한국인이 1950년의 미국인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장 교수는 OECD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한국의 노동시간(2163시간)이 외국에서는 어느 해에 나타났는지 추적했는데, 1950년 미국(1963시간)보다 많았다. 1960년 핀란드(2061시간), 1965년 프랑스(2156시간), 1974년 일본(2137시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국인은 가장 많은 시간 일할 뿐 아니라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한다. OECD의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지는 나이(실질 은퇴연령)는 평균 72.9세, 여성은 70.6세로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은 남성 64.6세, 여성 63.2세다.
한국이 과로사회라고 알려주는 건 이런 수치만이 아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도 과로사회다. 과로에 둔감하고 관대하다.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휴가는 세계에서 가장 적게 사용한다.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다면 의자나 조명, 환기, 휴게실 등 사무환경이라도 쾌적해야 할 텐데 그런 문제는 여전히 사소하게 취급되고 있다. 건강진단은 허술하고, 과로사나 산재 인정은 극도로 인색하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이 과로사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고, 한 해 350명이 과로사로 쓰러진다고 하는데도 노동시간 단축은 그동안 진전되지 못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시도는 경제 논리 앞에서 무기력했고, 여전히 작은 문제로만 여겨 왔다.
그러나 과로사회를 지탱해 가면서 우리 사회가 지출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훼손하고 이는 건강보험 지출로 이어진다.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은 성장을 못하고 있다. 시간이 있어야 책도 사보고 여행도 할 수 있는 법.
망국적 문제로 거론되는 높은 자살률이나 낮은 출산율도 장시간 노동에 상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낮은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 역시 노동시간을 줄이고 과로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볼 수 있다. 실업률 문제는 어떨까? 청년실업 문제는? 이 역시 장시간 노동 문제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일자리 나누기는 실업과 과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장시간 노동 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원봉사가 늘고 주민참여도 확산된다. 다양한 공동체가 살아나고 탄탄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노동시간은 기업이나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회문제가 노동시간과 관련돼 있다. 기업들이 노동시간을 틀어쥐고 버티는 바람에 사회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과로사회의 비용
입력 2017-10-19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