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는 대신 공석이었던 재판관 자리를 먼저 채웠다. 청와대는 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지명하도록 돼 있는 만큼 재판관 9인 체제를 먼저 갖추는 게 헌법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의 낙마 ‘트라우마’ 탓에 일단 유남석(60) 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를 확인한 뒤 헌재소장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소장이 아닌 권한대행이 이끄는 기형적인 9인 체제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김 전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신임 헌재소장 지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대신 국회에 헌재소장 임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헌재소장을 지명해도 국회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청와대는 9인 체제를 먼저 갖춘 뒤 헌재와 상의해 후임 헌재소장을 지명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순이다.
유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경우 유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전격 지명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두 차례나 헌재에 파견근무를 나갔을 정도로 헌재에 정통한 인사다. 사법연수원 13기로 강일원(14기) 이선애(21기) 재판관보다 선배다. 대법관 후보에도 올랐던 적이 있어 헌재소장을 역임하는 데 큰 하자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청와대가 유 후보자를 헌재소장 겸 재판관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고려해 유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지명하고, 이후 헌재소장 지명 문제를 재논의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헌재소장 임기 문제가 해결되면 문 대통령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현재 5명의 재판관이 2018∼2019년 사이 임기가 끝나는데, 헌재소장 임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으로 정리될 경우 남은 임기에 상관없이 헌재소장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청와대는 국회에 대한 발언은 자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국회 입법 문제는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우리 절차만 진행하는 것”이라며 “임기 문제는 국회가 알아서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헌재소장 논란과 현재 국회 상황, 향후 대응방안 등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의 원칙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며 “오래 끌 순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대 국회에는 헌재소장 임기 규정 등과 관련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9건 발의돼 있으나 한 건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헌법이 아닌 헌재법 개정만으로 헌재소장 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헌법에 헌법재판관 임기를 6년으로 규정해 놓았는데 헌재법만 개정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과 “헌법에 헌법재판관 연임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헌재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강준구 문동성 최승욱 기자 eyes@kmib.co.kr, 사진= 서영희 기자
靑, ‘9인 체제’ 완성 후 헌재소장 국회 통과 전략
입력 2017-10-1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