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균 기자의 현장보고] 늘 감염 노출된 의료진… 땀·눈물은 ‘진료덕목 1호’

입력 2017-10-22 20:16
28명의 간호사, 3명의 의사가 4개병동 150여 병상을 돌보는 보건복지부 직할 국립목포병원은 오늘도 의료진의 ‘너무 많은’ 땀과 눈물로 운영되고 있다.
결핵환자에게 제공되는 의약품.
전남 목포에 위치한 국립목포병원은 국내 결핵 치료의 핵심 의료기관이다. 기자는 지난달 5일 국립목포병원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병원 6층에는 내성결핵 환자가, 5층은 중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4층에는 여성 환자 20명과 남성 환자 15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외국인도 포함돼 있었다.

4병동의 간호사는 7명이 전부. 환자들에게 약을 복용시키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타병원의 동년배들은 과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그는 여전히 간호사일 뿐이었다. 진급이 언제쯤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핵은 감염성이 높아 병상간 간격은 최소한 2미터를 유지해야하고 음압도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동선 분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감염시설 관리가 전무할 당시 지어진 건물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환자와 의료진의 동선 분리는 불가능하다. 이는 의료진의 감염 위험성을 크게 높이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3층에서는 52개의 병상이 운영되고 있다. 진료 후 입원이 결정되면 처음 들르는 곳인 만큼 결핵균이 유독 독하다. 간호사들은 역시 7명. 수간호사 1명이 간호 스테이션을 지키고 나머지 6명이 3교대로 근무한다. 입원 환자들 중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환자들도 적지 않아, 간호사들은 골치를 썩고 있었다. 세 번 거듭 의료진의 권고를 무시하면 강제퇴원이 이뤄진다. 원칙은 이렇지만 전염성이 강한 환자들이라 의료진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갈 곳 없는 딱한 상황의 환자들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질병=결핵 환자는 외롭다. 결핵균의 특성상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하는 탓이다. 국립목포병원에서 만난 김성수(가명)는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감염성이 강한 상태라 그는 1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렵사리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침대에, 기자는 보호자 베드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거리는 1미터 남짓. 기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성수씨는 누워서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있었다. ‘2미터는 돼야 한다던데….’ 이런 얄팍한 생각을 하면서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기자는 그에게 연신 질문을 던졌다.

입원 초기만 해도 지인들의 쾌유 응원이 많았다고 했다. 잠시 뿐이었다. 그가 속했던 조직에 보건소의 결핵 역학조사가 들어가자 응원이 원망으로 바뀌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의 메신저에 더 이상 새로운 메시지는 오지 않는다. 결핵균은 성수 씨의 건강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지인들마저 앗아갔다. 자리를 파할 무렵 그는 분식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분식이요?” “네. 떡볶이 같은 거 있잖아요.”

돌아갈 곳이 있는 성수 씨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오갈 곳 없는, 사실상 행려자에 가까운 환자들에게 병원은 그들이 기거할 유일한 안식처였다. 김천태 병원장은 “내성결핵이나 만성배균자는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사망할 때까지 병원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호스피스 간호를 해야 하죠. 국립목포병원의 병상수를 고려하면 더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있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병원 의료진은 지금도 한계 상황이라….”

말 안 듣고 치료는 요원한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 오갈 데 없이 결핵에 걸린 환자들이 마지막에 머무는 병원. 28명의 간호사, 3명의 의사가 4개병동 150여 병상을 돌보는 병원. 개도국의 이름 모를 보건소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직할 국립목포병원은 오늘도 의료진의 ‘너무 많은’ 땀과 눈물로 굴러가고 있다.

결핵전문 간호사들의 말

“청춘 바친 간호에 돌아온 것은 잠복결핵

난폭 환자들 툭하면 의료진 상대 폭력

사고터지면 나머지 병동은 간호사 공백”


지난 5일 국립목포병원에서 만난ㄱ씨와 ㄴ씨는 각각 결핵 병원에서 23년과 30년을 보낸 베테랑 간호사였다. ‘결핵 치료’에 일생을 바친 이들에게 남은 건 ‘잠복결핵’이었다.

-국립목포병원의 각 병동을 간호사 7명이 3교대로 돌아가며 돌본다. 실제 업무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7명이 들어간다고 해도 한명이 일근을 하고 나머지 6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식이다. 나이트와 이브닝은 1명, 데이는 2명. 야간 근무를 끝내고 쉬는 방식으로 근무가 회전된다. 일손이 부족해 홀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리해야할 업무량과 부담감이 상당하다.”

-환자들의 특성이 있나.

“환자들은 사람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이곤 한다. 특히 최소한 2년 동안 입원해야 하는 내성결핵환자의 경우, 오갈 데 없는 처지의 환자가 많다. 이들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대화를 나누다 환자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는 일도 간혹 있다.”

-의료진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때도 있나.

“과거에는 간호사가 맞기도 하고 그랬다. 현재는 휴대전화로 위협 상황이 발생하면, 비상벨을 누른다. 그 즉시 당직실과 타병동 간호사들에게 위급 상황이 알려진다. 모의훈련을 해보니 다들 달려오는데 5분가량 걸리더라. 물론 그러려면 휴대전화를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 피치 못하게 휴대전화가 없을 땐 악을 쓰거나 해서 SOS를 하는 식이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어떤 사고가 터져서 타병동 간호사들이 달려온다 치자. 나머지 병동은 간호사가 공백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응급 상황 시 간호사 혼자서 이를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CPR과 약물 주입, 보호자 연결 등을 위해선 최소 서너 명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2명이 근무하는 데이근무 때는 나머지 한 명이 병동을 지킬 순 있지만, 홀로 근무하는 이브닝 및 나이트 근무에는 의료공백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올 스톱’ 된다는 건가.

“그렇다. 최근에도 3층 병동에 오후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밤에 타 병원으로의 전원이 결정됐다. 패혈증이 의심됐던 환자는, 그러나 노숙자였다. 이런 환자들은 보호자는 물론,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원을 하려 해도 보호자가 없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그날 3병동 환자는 전원을 하는 가운데, 5층에서는 응급 상황이 터졌고, 6병동의 한 환자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세 군데서 다 ‘터지니까’ 앞이 깜깜했다.”

-감정적으로 의료진의 고충이 상당할 텐데.

“우리 병원 환자들은 그나마 병동이 있을 때는 얌전하다. 그러나 만약 환자가 술을 마신다던지 의료진의 치료 지시를 계속 어겨 강제퇴원 조치가 이뤄지면, 매우 난폭하게 돌변한다. 그도 그럴게 병원을 나가면 당장 오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밤길 조심해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협박은 숱하게 들었다. 자동차 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다가 언젠가 해코지를 한다며 말로 위협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가족들의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임신했을 때나 출산 후, 자녀들이 어렸을 때가 그랬다. 결핵은 감염병이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우리들은) 잠복결핵을 갖고 있다. 결핵 의료기관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를 하다 보니, 잠복결핵 검사를 하면 양성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직업병’인 셈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 면역력이 약하지 않나. ‘나 때문에 혹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계속 했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퇴직하고 난 후에 늙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결핵이 발병되진 않을까 우려가 된다. 더러 근무 중에 결핵에 감염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처음 잠복결핵 검사 결과를 접했을 때는 충격이 상당했을 것 같다.

“아무리 결핵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라고 해도, 검사 결과가 수치적으로 딱 나오니까 ‘내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나 근무여건을 보면 몸 관리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예를 들어 야간 근무를 하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았지만, 교대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자고 있는 선배가 대신 근무를 서고 난 다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매일 이런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김양균 쿠키뉴스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