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폴 틸리히 심포지엄 가보니… 현대인들에게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

입력 2017-10-19 00:02
전영호 미국 성바울신학대학원 교수(오른쪽)가 18일 경기도 수원 꿈의교회에서 열린 폴 틸리히 신학 심포지엄에서 강연을 맡은 한스 슈바르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를 소개하고 있다.

‘삶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20세기 유명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가 던지는 질문이다. 틸리히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목으로 참전했다. 친한 장교가 전선에서 사지가 찢겨 죽는 걸 코앞에서 봤다. 전쟁의 참혹한 비극은 인간의 존재와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틸리히는 전역 후 1919년 독일 베를린 칸트학회에서 ‘문화 신학에 대한 아이디어’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는 도덕 법 경제 사회 등 각 문화영역에서는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는 있지만 답은 얻지 못한다고 봤다. 그렇다고 철학적 방법을 통한 질문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신학은 궁극적 의미가 하나님이라고 답변하는 데 유용하지만 철학은 해답에 도달하기 위한 질문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렵고 낯선 틸리히의 신학을 전문가의 강연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렸다. 경기도 수원 꿈의교회(김학중 목사)와 평택 서정교회(한명준 목사)는 18일 꿈의교회 광교레인보우힐에서 ‘종교와 문화: 미래 교회가 당면한 신학적 고찰’을 주제로 폴 틸리히 신학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첫 발표를 진행한 한스 슈바르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는 “틸리히의 신학이 다원화·세속화된 현대사회와 신학을 소통시키는 접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그곳 사람들을 향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거나 “알지 못하는 신에게 새긴 계단을 봤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슈바르츠 교수는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종교적 행위의 의미가 뭔지 고민하도록 철학적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바울이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궁극적 의미인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슈바르츠 교수는 현대인들도 당시 아테네인들과 비슷하다고 봤다. 그는 “현대인들은 회개하거나 용서를 구하진 않지만 치유와 건강을 원한다”며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진 않지만 삶의 공허함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틸리히 신학은 이들에게 무턱대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기보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내면에 근원적인 의미를 찾는 갈망이 있다는 걸 대화를 통해 깨닫게 만든다.

이어 매리 앤 스탱거 미국 루이스빌대 은퇴교수는 “현대인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거나 트윗을 보내면서 실제 행동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않는다”며 “삶의 깊은 의미를 고민하지 않으면서 삶이 행복하다고 피상적으로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삶의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깊은 종교적 의미에 도달할 때 다른 사람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틸리히 신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틸리히학회장을 역임한 전영호 미국 성바울신대원 교수는 “사회와 소통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화와 질문하는 힘을 강조하는 틸리히 신학이 잘 알려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수원=글·사진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