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인천 서구 가연로의 한 구멍가게. 포대기에 싸여 엄마 등에 업힌 정고은(6·웨스트증후군, 뇌병변1급)양은 물끄러미 가게 냉장고를 들여다봤다. 포대기 아랫단 밑으로 빠져나온 다리엔 플라스틱 고정 장치가 굽히지 않는 발목을 힘겹게 붙들고 있었다. 엄마 이애숙(53·검단 사랑의교회) 권사가 냉장고 속 우유를 집어 들자 핏기 없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 고은이는 오른쪽과 왼쪽 뇌를 연결하는 다리가 없대요.”
고은이는 6년 전 세상에 태어나던 날 축하 대신 걱정을 먼저 들어야 했다. 뇌량(좌뇌와 우뇌를 감싸고 있는 구조물)이 없어서 인지와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 권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희망의 유효기간은 딱 100일이었다. 가족들과 백일잔치를 하던 날 고은이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고은이가 백일잔치하고 돌아와 잘 잠들었는데 새벽 2시부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눈동자는 뒤집혀 흰색뿐이었고 목과 팔다리는 사람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꺾여서 ‘이렇게 숨통이 끊기는 건가’ 싶었죠.”
그날 이후 고은이의 이름 뒤엔 ‘G40.4’란 질병코드가 붙었다. 웨스트증후군, 소아 간질 환자 중 2%를 차지하는 희귀질환이다. 하루 수십 차례 발작을 겪는 사이 입술은 터지고 이마와 뒤통수엔 멍 자국이 사라지질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생사를 오갈 때마다 미혼모인 엄마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출산을 원치 않았던 고은이의 아빠가 임신 소식을 듣곤 두 사람을 떠났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한 번에 수십만원이 드는 검사, 발작 완화를 위한 약값, 각종 치료비 등은 단출했던 집 한 채를 앗아갔다. 고은이가 세 살 땐 전기요금과 난방비가 밀려 집 안에 빨간 딱지가 붙기도 했다.
장애수당(20만원)과 양육수당(10만원), 한부모수당(5만원)으로 들어오는 35만원이 고은이네 주 수입원이다. 고은이가 주간보호센터에 가 있는 동안 이 권사는 작은 수레를 들고 동네를 돈다. 폐지와 옷, 고철을 모아 고물상에 건넨 뒤 돌아오는 대로 유아용 장난감을 조립한다. 고은이를 재우고 밤새워 조립해도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은 15만원 남짓. 이 권사는 “그래도 감사하다”고 했다.
“밀알복지재단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서 고은이가 많이 좋아졌어요. 여전히 하루 열 번은 발작증세를 보이지만 제가 찬양 불러주면 배시시 웃기도 하고 의사표현도 해요. 지금 주먹으로 턱을 톡톡 치죠? 저건 졸립다는 뜻이에요(웃음).”
‘5학년 3반’(53세)이라고 당차게 나이를 얘기하는 이 권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고령의 엄마에겐 날로 버거워지는 체력보다 고은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게 더 큰 짐이다. 이 권사는 “‘무거운 짐 진 자’로 살아가지만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신앙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 권사는 눈이 수북이 쌓인 날에도 고은이를 업고 새벽기도회를 위해 언덕을 올랐다. 지난해엔 오른쪽 어깨 회전근이 파열돼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딸과 함께하는 예배와 기도는 놓지 않았다. 고은이를 안고 기도하는 이 권사의 볼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예수님, 고은이 다리에 힘을 주셔서 걷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의 다리로 쓰임 받게 해 주세요.”
인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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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품은 아이들 ⑧] 하루 열 번 이상 발작… 수없이 생사 갈림길에
입력 2017-10-1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