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수사는 결론까지 총 1년 11개월이 걸렸다. 검찰은 17일 공무집행의 정당성, 해외 유사 사례 및 검찰시민위원회 의견 등 검토할 게 많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책임론이 번지지 않도록 검찰이 속도를 조절하며 ‘늑장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진동)는 2015년 11월 18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을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접수해 백씨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잊혀진 사건으로 일컬어질 만큼 수사 상황이 진척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사가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면 진상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까지 했다. 검찰은 백씨가 지난해 9월 사망하고 나서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장향진 전 서울경찰청 차장을 소환조사했다. 강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서면조사만 한 차례 실시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이제는 수사가 거의 막바지에 와 있다.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간 이 사건을 어떻게 수사해 왔는지, 왜 기소 여부 및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시의적절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는 사이 백씨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갈등은 커져 갔다. 경찰과 유가족은 백씨 부검영장 집행을 놓고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사망 원인 논란은 서울대병원이 지난 6월 백씨의 사인을 종전의 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칠 때까지 계속됐다. 백씨가 물대포가 아닌 ‘빨간 우의’를 입은 남성에게 맞아 숨졌다는 근거 없는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백씨 사망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작업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달 7일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백씨 유가족과 면담을 갖고 “신속한 결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늑장 수사 지적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지난 13일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한 뒤 사건 처분에 반영했으며, 선례가 없는 사건이어서 새로운 결론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독일에서 살수차 직사 살수로 시위자가 실명된 사례가 있었는데, 이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처리했다”며 “독일 정부와의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피해 사례, 수사·재판 결과 등을 수집해 다각적인 검토를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백씨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백씨의 의료기록을 청와대와 경찰에 유출했다는 의혹, 서울대병원 직원들이 백씨의 의료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경찰 등의 압력이 있었는지도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8월 검찰 인사 후 수사팀이 교체되고 나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씨의 장녀 도라지씨는 강 전 경찰청장을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검찰이 강 전 경찰청장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재고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씨 유족이 낸 고발장에는 강 전 경찰청장 등 7명의 이름이 명시됐지만 검찰은 이 중 4명만 재판에 넘겼다.
글=신훈 기자 zorba@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이은지 기자
정권 눈치보다 1년11개월 걸린 “공권력 남용에 백남기 사망”
입력 2017-10-18 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