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조사를 통해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정황이 포착됐다. 공정위는 특히 박근혜정부가 재단 설립을 모색 중이던 2014∼2015년 대기업을 집중 조사하고, 재단 출범을 전후해 모두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LG 포스코 KT 금호아시아나 대우조선해양 5개 대기업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는 대기업의 부당지원 행위나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다루는 공정위 직권조사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2014년 6월 포스코와 KT를 시작으로 8월 금호아시아나, 이듬해 1월 LG유플러스에 대해 순차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독대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는 등 문화체육계에 대한 출연 요청이 시작되던 시점이다.
공교롭게도 5개 기업 중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4개사(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KT 18억원, 금호아시아나 7억원)는 2015년 하반기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냈다. 그리고 공정위는 양대 재단 출범 전후인 2015년 5월부터 12월까지 해당 기업들에 대한 직권조사를 차례로 종결했다.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10월 26일 미르재단에 7억원을 출연했고, 이틀 뒤인 28일 그룹의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 무혐의 조치됐다. KT 역시 10월 26일 미르재단에 11억원을 출연한 뒤 K스포츠재단에 재차 7억원을 출연(12월 31일)하기 전인 12월 1일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를 두고 애초에 이들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직권조사가 명분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모두 무혐의 또는 심의절차종결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공정위 직권조사 결과를 보면 주의·경고·시정조치 등이 이뤄진 비율은 84%에 달한다. 하지만 2014∼2015년 초 이뤄진 직권조사 5건은 모두 무혐의나 절차종결이 이뤄졌다. 해당 시기 집중된 무더기 조사와 무혐의 처분이 단순한 기업 압박 차원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보수정권 9년과 그 이전 정권의 직권조사 건수를 비교하면 특정 시기, 일부 기업에 집중된 이례적인 조사 배경에 대한 의구심은 더 짙어진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는 대기업 직권조사가 74건 이뤄졌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15건으로 대폭 줄었다. 무혐의 처분 비율도 ‘11%→43%’로 크게 증가해 대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감시·견제가 완화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98년부터 재벌의 부당지원 행위 조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해 온 ‘조사국’이 ‘시장조사팀’으로 축소되고,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시장조사팀마저 재계 요구 등에 따라 폐지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의원은 “이미 2014년 CJ E&M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 과정에서 무리한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면서 “대기업 총수의 사익편취, 부당지원 행위 등에 대해 거의 조사하지 않던 공정위가 특정 시기에 이례적으로 무더기 조사하게 된 경위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단독] 朴정부 공정위 직권조사 통해 대기업 ‘미르·K 출연’ 압박 정황
입력 2017-10-17 19:54 수정 2017-10-17 2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