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업계에서는 출시 시기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언제 내놓느냐에 따라 흥행 여부가 갈린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근로자들은 회사가 정해놓은 출시 일정에 맞춰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 따라오는 게 자발·비자발이 뒤섞인 야근과 휴일 근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68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12개 게임업체 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근로자의 63.3%가 법적 기준치를 초과해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인원을 더 뽑아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근로자 입장도 편하지만은 않다. 게임업계를 비롯한 IT업계 특성상 인원을 더 뽑는다고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대신 그동안 받던 초과근로수당은 줄어든다. 게임업계 경력 13년차인 A씨는 “제조업처럼 투입 인원만큼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며 “차라리 고성과자에게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강조한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은 일자리 나누기다. 현행 주당 최대 68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단축했을 때 추가로 필요한 인력을 회사에서 더 뽑자는 것이다. 지난 8월 기준 9.4%를 기록한 청년실업률 해소를 염두에 뒀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안을 담은 근로기준법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근로기준법 행정해석을 바꾸겠다는 배수진도 쳤다. 2004년 이후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여기에 노사합의 시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근로기준법 53조) 및 휴일근로(56조)를 인정한다. 하지만 2009년 9월 정부가 공표한 행정해석은 이 12시간에 휴일근로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토·일요일에는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이 변칙 적용돼 주당 최대 68시간 근무가 합법화됐다. 연장·휴일근로를 통합해 12시간만 인정하도록 행정해석을 바꿀 경우 근로기준법의 국회 개정 없이도 주 52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정부가 행정해석을 바꿀 경우 국회 개정안보다 파장이 크다는 점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17일 “행정해석 변경에 따라서는 즉각 전 사업장에 적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사업장 규모별로 근로시간 단축에 유예를 뒀다. 여당은 1∼3년에 걸친 차등 시행을, 야당은 1∼5년에 걸친 차등 시행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영계는 아예 6단계에 걸친 차등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가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게임업계를 비롯한 IT 업종처럼 ‘일자리 나누기=경쟁력 강화’라는 도식을 적용하기 힘든 구조를 지녔을 경우 되레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영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 상향과 함께 이중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노동시간 단축은 필요하지만 급격히 단축하면 산업계와 영세 자영업자가 바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근로시간 단축 논란] “잡 셰어링 절실” vs “속도조절 필요”
입력 2017-10-1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