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블랙리스트 전달 위법 아니다”

입력 2017-10-17 19:00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흰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부축을 받으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함께 재판을 받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판 도중 쉬는 시간에 정장차림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조 전 장관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뉴시스

“주소가 바뀌었습니다. 내자(內子·아내)가 요양시설로 옮겨서….”

17일 오전 서울고법 312호 중법정. 한때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피고인석에 앉아 인적사항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늘색 환자복을 입고 나온 김 전 실장은 1심 재판 때보다 초췌해 보였다. 그러나 정정한 목소리로 재판부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첫 재판에서 김 전 실장 측은 1심이 징역 3년의 유죄를 선고한 혐의들이 부당하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 측은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관련) 정보보고 문건은 국정 운영에 참고하라는 취지”라며 “이를 비서실장이 참고하라고 전달한 건 위법행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전 실장 측이 유죄가 선고된 혐의에 대해 하나하나 항소 의견을 내놓자 검찰은 “김 전 실장 측은 적법하게 항소이유서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의견을 말할 수 없는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앞서 김 전 실장 측이 항소이유서를 지각 제출한 점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법원이 직권으로 심리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먼저 얘기해 달라”고 조정에 나섰다.

한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측은 김 전 실장보다 다소 밝은 모습으로 법정에 나왔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법원에 도착한 조 전 장관은 “항소심 재판을 성실히 받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지난 8월 국회 위증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불구속 상태가 됐다. 블랙리스트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받았다.

특검 측은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업무에 직접 개입했고 다수의 증거가 있는데도 1심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선 “문화 예술 활동을 위축시키는 교묘한 사전 검열이자 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 파괴 범죄”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의 사건과 별도로 진행 중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병합해 심리하기로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