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하 <4> 두릅 농사·병아리 키우기… 손대는 족족 실패

입력 2017-10-19 00:01
아내, 어머니와 이 산 저 산을 헤매고 가시에 찔리면서 야생 참두릅 밭을 가꾸었으나 실패했다.

낙향해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나를 들어 쓰시겠다는 주님의 약속만이 그 막막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 유일한 힘이었다. 가을이 오고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이 심방 왔을 때도 여전히 손님 대접할 음식조차 없었다.

초라한 살림살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배가 출항하고 귀항하는 부둣가에 나가지 않았다. 어장에 나가면 생선 몇 마리쯤 얻어 와서 상을 차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동정이 죽기보다 싫었다.

사람들은 나를 ‘예수쟁이’라고 불렀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에 고귀한 그분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데, 어느 날 길에 큰 호박 하나가 덩그러니 나뒹구는 게 아닌가. 아마 꼭지가 썩었다고 누군가 버린 듯했다. 그 호박을 날름 주웠다. 아내에게 가져다주니 썩은 데를 베어내고 깨끗이 씻어 범벅을 쑤었다. 그리고 그날 심방을 온 손님의 상에 호박범벅이 올랐다.

비록 소박한 상이었으나 손님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한 권사님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때 그 범벅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그게 천상의 맛이었을 걸”이라고 웃으며 말하곤 한다.

어촌 마을에서 보낸 몇 달 가운데 웃음을 머금은 기억은 이처럼 모두 주님의 위로를 통해 주어진 것들이었다. 우리는 여름에 와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1998년 새봄을 맞았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낸 모든 시간은 온통 실패의 연속이었으리라.

500평 밭에 야생 참두릅을 옮겨 심으려고 아내, 어머니와 온 산을 뒤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두릅을 캐 밭에다 심었는데, 사람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그 두릅나무에 하도 찔려 성한 데가 없을 정도였다.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두릅농사는 실패를 맛봤다.

병아리도 분양받아 키웠다. 하지만 밤에 족제비들이 다 물어가 버렸다. 속이 상했다. 개를 사육하기도 했는데, 병으로 죽어가는 개들을 보면서 속이 상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광견병에 걸린 개를 살린답시고 개 입 속에다 손을 넣어 약을 먹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깰 만큼 아찔한 순간들이 하루 지나고 나면 또 하루가 이어졌다.

한 번은 군부대에서 가져온 짬밥으로 개밥을 끓여 먹였다. 한데 짬밥 국물을 만지다 손에 습진이 생겨 고생했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이 없어 짬밥에서 생선 덩어리를 꺼내 끓여 먹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올 무렵, 우리 가족은 산골짜기 외딴 곳으로 이사했다. 거기 내 이름으로 된 땅에 폐자재를 활용해 지은 창고가 있었다. 여기에 방 한 칸을 덧붙여 주거공간을 만들 셈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거처할 공간을 만드느라 땀 깨나 흘렸다. 거의 1년간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 네 식구를 위한 오두막이 완성됐다. 남들이 보기엔 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어느 왕과 왕후의 궁궐 못지않았다. 이제부터 이 오두막에서 하나님이 선생님 되시고, 우리 가족은 학생이 되어 놀라운 믿음의 학교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매일매일 우리 가족은 가정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하루하루 기도의 추억을 쌓아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