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 대행체제’ 고집하는 靑에 사실상 ‘반기’

입력 2017-10-16 22:28 수정 2017-10-16 23:29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가 열린 헌재 회의실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다. 김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관 8명은 16일 공석인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뉴시스

“당연히 이뤄져야 할 국정활동에 대해 당사자인 헌법재판소가 원칙론을 밝힌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16일 헌법재판관 전원이 조속한 헌재소장 임명을 촉구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헌재 발표는 청와대의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 유지’ 방침에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어서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헌재에 대한 국정감사를 보이콧한 야당을 강하게 비판한 것과도 결을 달리한다. 헌재의 역할과 위상에 비춰보면 소장 공석 사태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헌법적 비상 상황이라는 의견이 법조계에 크다.

김 대행 등 헌법재판관 8인은 이날 오후 4시부터 1시간가량 소장·재판관 공석 사태에 대한 논의를 가진 뒤 언론에 입장을 전하기로 결정했다.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한 헌재에서는 헌재소장 공석 사태를 엄중히 인식하지 않는 정치권의 태도를 비판하는 기류가 형성돼 왔다. 정치권에서 대법원장의 국회 인준을 독려한 것과 비교해서도 또 다른 ‘최고법원’인 헌재의 소장 공석사태 장기화는 서운한 일이었다. 한 재판관은 헌재소장 임명 필요성에 대해 “상식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런 상태에서 청와대의 ‘권한대행 체제 유지’ 발표 및 국감 파행 사태는 헌재 구성원들이 느끼는 심각성을 더욱 키웠다. 헌재는 지난 13일 국감에서 정무직 인원의 결원이 ‘재판소장 1명’이라 표시된 초유의 업무 현황을 보고할 예정이었다. 국감 파행 후 거의 모든 언론이 나서서 헌재소장 임명을 촉구한 것도 이날 재판관들이 모여 논의한 배경이 됐다. 재판관들은 헌재와 청와대가 교감을 나눴다는 억측까지 제기된 데 대해 ‘말이 안 된다’며 불쾌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 내부에서는 ‘권한대행 체제 유지’에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가 새로운 재판관을 임명해 ‘9인 체제’가 채워질 경우 헌재소장이 임명되지 않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헌재가 해석하기에 따라 ‘권한대행 체제 유지’는 ‘8인 체제 유지’와 같은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헌법재판 사건들을 신속히 선고해야 할 헌재 입장에서는 계속 부담을 안고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헌재가 국감 중 수모를 겪는 일까지 벌어지며 헌재의 비분강개 여론은 최고조에 달했다. 업무보고를 위해 국감장에 들어선 김 대행은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야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까지 들어야 했다. 김 대행이 ‘위장된 소장’이라는 주장도 나왔고, 아예 “헌재가 없어져야 한다”고 발언한 의원도 있었다. 헌재 관계자는 “소장이 있다면 왜 권한대행 체제를 운영하겠느냐”며 “권한대행을 관두라는 요구는 선후가 바뀐 일”이라고 지적했다.

헌재에는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을 둘러싼 군형법 위헌법률심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속인들이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간 합의와 관련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두고 제기된 위헌법률심판 등 난제들이 쌓여 있다. 헌재의 한 재판관은 “재판관 9인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