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1차 구속영장 만료일이었던 16일 작심하고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5월 23일 옷깃에 수인번호 ‘503’을 달고 첫 재판에 출석한 이래 ‘예’ ‘아니요’와 같은 간단한 답변 말고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 표출하고 직권남용·뇌물 등 자신의 혐의에 대해선 전면 무죄를 주장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분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겠다”며 지지자들에게 결속을 촉구하기도 했다.
추가 구속→재판 보이콧 시사
박 전 대통령 측 돌발 행동의 직접적인 이유는 구속영장 재발부에 대한 불만이다. 유영하 변호사는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며 재판에 관여할 어떠한 당위성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추가 구속 결정은 사법부 역사의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까지 꺼내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증거인멸 우려 등 재판부의 추가 구속 사유가 부당하다는 게 박 전 대통령 측 주장의 핵심이다.
구속기간이 연장된 피고인 측이 법원에 불만을 표출하는 건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재판 절차나 결정에 노골적으로 불복하는 건 재판부의 양형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이런 극단적인 전략은 (변호사들이) 좀처럼 제안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마저 이날 논평을 통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건 변호사의 기본 임무이자 소명”이라며 “변호인단은 지금이라도 사퇴 의사를 철회하고 박 전 대통령을 위한 변호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했다.
변호인단이 사임의사를 철회하지 않는 한 박 전 대통령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국선 변호인의 변론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유 변호사 등 변론을 주도해온 변호사들이 모두 사임한 상황에서 사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할 가능성은 낮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변호인단이 사임 의사를 재고하거나 다른 사선 변호인이 선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재판부는 국선 변호사를 직권으로 선임할 수 있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는 10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 기록과 그동안의 재판 진행 내역을 파악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측이 국선 변호사의 변론 활동에 협조할지도 미지수다. 상당 기간 심리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피고인(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불출석한 상태에서 열리는 ‘궐석재판’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판부는 “재판이 지연될수록 미결 구금기간(판결 확정 전 구속기간)이 늘어나 피고인이 피해를 본다”며 변호인단 사임을 재고해 달라고 했다.
친박세력 결집 도모
불리한 상황을 감수하고 박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 자신을 둘러싼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서초동의 다른 변호사는 “법정에서 ‘정치적 외풍’이나 ‘여론 재판’ ‘정치보복’ 등의 민감한 용어를 쓴 건 유죄 선고의 우려를 드러낸 것”이라며 “법리 공방 대신 정치 쟁점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이 자신의 출당을 저울질하고, 국정농단 핵심 피고인들이 줄지어 유죄를 선고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친박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며 자신의 결백도 재차 강조하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추가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이유로 변호인들이 사임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朴의 ‘재판 흔들기’… 법리공방 대신 ‘정치쟁점화’ 노림수
입력 2017-10-1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