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변호인 “창자 끊어지는 아픔… 사법 흑역사로 기억될 것”

입력 2017-10-16 18:02 수정 2017-10-16 22:03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췌한 모습으로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13일 구속기간 연장이 결정된 후 첫 공판이었다. 뉴시스

“피고인께서 재판부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1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지난 13일 구속 연장 결정 후 처음으로 열린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이같이 말하자 법정이 술렁였다. 재판 5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법정 안에 무거운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은 채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한 사람(최순실)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해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이내 안정을 되찾은 듯 힘이 실린 목소리로 “재임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며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에는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연장으로 “재판부가 오직 헌법과 법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이라는 믿음이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약 4분 동안 원고를 읽으면서 한 차례도 재판부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기업인과 공직자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발언을 마친 뒤에는 정면에 있는 검사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유 변호사는 곧바로 휴정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휴정을 선언했다.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가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변호인단은 모두 일어나 목례를 했다.

약 15분 후 재개한 법정에서 유 변호사는 재판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광장의 광기’ ‘야만의 시대’ 등 자극적인 표현을 이어가다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면서 허허롭고 살기 가득한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며 울먹였다. 이어 “구속연장 결정은 우리 사법역사의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억될 것”이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방청석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판부는 “구속 연장 결정은 피고인의 유죄를 예단해서가 아니다”라며 진정시키려 했다. “변호인이 전원 사임할 경우 심리가 상당히 지연되고 그 피해는 피고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며 “사임 여부를 신중하게 재고해 달라”고도 했다.

재판이 끝나자 한 중년여성 방청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며 “대한민국 최고 판사이니 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나를 사형시켜 달라”며 울부짖다 퇴정 당했다. 이날 재판은 시작한 지 50분도 채 안 돼 종료됐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