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유럽 원정 2연전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5일 인천국제공항. 일부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 사망했다’ ‘문체부는 대한축구협회 비리 조사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히딩크 복귀설 이후 고조된 팬들의 분노는 도무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현 사태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축구협회의 미온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이용수 협회 부회장은 지난 6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사퇴 당시 “모든 걸 책임지겠다”며 기술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이 부회장은 그러나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히딩크 전 감독을 만났다. 그때 그가 직함만 바꾼 채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팬들은 뒤늦게 알게 됐다. 김호곤 현 기술위원장 역시 협회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협회 내부 실세들은 언제든지 다른 보직을 통해 등장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16일 “기술위원장 사퇴가 협회에서 아예 나간다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부회장직을 겸임했기에 자연스럽게 이어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회전문 인사는 협회측의 꼼수와 무책임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협회의 안이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축구협회는 평가전에서 대표팀이 성적을 내면 사태가 일단락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히딩크 논란’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을 접한 뒤 팬들은 축구협회를 일종의 적폐로 간주하고 있다. 대표팀의 콘트롤 타워인 협회가 인적쇄신을 하지 않는 한 팬들은 대표팀 경기력이 일부 개선됐다고 분노를 거둬들일 분위기가 아니다. “협회가 자기 살을 도려낸다는 의지로 개혁에 나서지 않는 한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는 축구 관계자의 목소리는 그래서 생생히 와닿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현장기자-박구인] ‘적폐’ 비판에도… 축구협회 ‘회전문 인사’ 구태
입력 2017-10-16 18:18 수정 2017-10-16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