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댄스 20주년’ 이종호 예술감독 “이젠 성년이다 계몽의 시대 접고 성숙한 춤 춰야”

입력 2017-10-16 21:13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예술감독이 16일 공연이 주로 열리는 서강대 메리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시댄스 포스터.
“월간 춤에서 ‘외국 무용 잡지에 난 리뷰 번역하는 일을 해보지 않을래요?’라고 연락이 왔었죠”

올 가을, 서울을 현대무용의 열기로 달구는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가 스무 살이 됐다. 현대무용 불모지 한국에 명실공히 국제행사인 시댄스를 발족시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주역인 이종호(64) 시댄스 예술감독을 16일 주요 공연장인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에서 만났다.

창립 계기를 물었더니 20대 후반의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얘기를 꺼낸다.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의 외국어 실력을 눈여겨본 지인의 소개로, 무용과는 담쌓고 살던 남자가 무용 번역을 하게 된 것이다. 1981년 입사한 연합통신(연합뉴스의 전신)에서 사회부 외신부 등에서 일하던 그였지만 무용 비평까지 손대게 됐다. 나중에는 문화부 기자로 진출해 무용에 대한 애정을 한껏 꽃피우던 그는 한국 현대무용의 척박한 토양이 늘 안타까웠다.

“그야말로 낙후돼 있었어요. 무용하면 발레를 생각하지 현대무용을 누가 거들떠보기나 했던 시절인가요. 계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글이라는 수단으론 한계가 있었어요. 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1998년, 기회가 왔다. 2년 전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를 발족시켜 회장을 맡았던 그는 그해 제13차 국제무용협회 세계총회 서울 유치를 계기로 시댄스를 출범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브뤼셀특파원 출신인 그에게 통신사에서는 파리특파원을 제안했지만, 마다하고 시댄스의 돛을 올리는데 매진했다. 시큰둥해하던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국장을 설득해 정부 예산을 따냈다.

“첫해 4주간의 행사기간 동안 독일의 수잔 링케, 프랑스 출신의 모리스 베자르 등 교과서에서 봤던 전설 같은 무용수들이 한국을 찾으니 무용인과 애호가들의 열광이 대단했지요.”

20회를 맞은 올해까지 75개국 394개 외국 무용단, 528개 국내 무용단이 참가하는 국제무용제로 컸다. ‘계몽’에 주안점을 두고 안무 수준이 높은 외국의 현대무용 단체를 불러서 공연을 보여주고 관객의 눈높이를 자극하는데 주력했다. 대중적 확산을 위해 길거리 공연을 하고, 디지털과 무용을 접목한 ‘디댄스’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성년이 됐으니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부터는 계몽의 시대를 넘어 질적 도약을 하고 싶다”는 그는 예술의 사회성을 새 기치로 내걸었다. “무용도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현대무용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특집’을 마련해 사회·정치적 이슈를 건드릴 것”이라면서 내년 특집 주제를 ‘난민’이라고 소개했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