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의 대형 창극 ‘산불’이 오는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중구 해오름극장에서 현대적 무대와 이야기로 찾아온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국립창극단 연습실. 이성열 연출가의 지휘 아래 배우와 연출진 50여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대에 등장하는 대나무 숲과 높은 지대를 대신해 검은색 장막과 목재 구조물이 설치됐다. 주역인 점례(이소연)가 연습실 중앙에서 “그대로구나. 저 너머 들판 무성한 억새도 그대로구나”라며 과거를 회상하자 대나무 숲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출가는 “숲 소리가 너무 크다”라며 음향과 무대 전반을 조율했다.
연습은 실제 공연처럼 2시간가량 진행됐다. 배우들은 무대 소품인 장총과 죽창, 횃불 등을 들고 대사를 하면서 감각을 익혔다. 공연에서 맞닥뜨리게 될 360도로 회전하는 나선형 무대와 실제 대나무 1000그루로 조성한 거대한 숲 장치에 대비해 동선을 미리 정리했다. 공연에선 실제 크기를 방불케하는 추락한 폭격기 모형도 나올 예정이다. 요즘 나오는 대형 뮤지컬 무대 못지않다.
현대 희곡의 이정표로 꼽히는 차범석 작가의 원작 산불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본능을 그린다. 6·25전쟁 중 과부만 남은 지리산 어느 자락에 젊은 남자 규복(김준수 박성우)이 숨어들고 과부 점례가 규복을 대밭에 숨겨준다. 이를 눈치 챈 이웃집 과부 사월(류가양)이 규복을 함께 보살피자고 제안하면서 일어나는 비극적 이야기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냉전 시대의 이념 갈등으로 인한 고통과 보편적인 한의 정서를 우리 소리를 통해 끄집어냈다.
표현 방식도 현대적으로 풀어내려 공들였다. 원작엔 없는 캐릭터가 등장해 새로움을 가미했다. 배우 8명이 까마귀로 분해 목을 좌우 앞뒤로 움직이면서 “꺄악” 소리를 내고, 전쟁 중 죽은 남자들도 코러스로 등장해 군무를 췄다. 또 마을에 하나 남은 남자 김노인(허종열)과 전쟁으로 정신 나간 귀덕(송나영) 등이 노골적이고 질펀한 대화를 나누면서 희극적 요소를 부각했다. 배우들은 연습 중 몇몇 장면에서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듣는 재미도 기대된다. 영화 ‘부산행’과 ‘곡성’ 등에서 다양한 음악을 시도한 장영규 작곡가가 창극 작업에 처음 도전해 판소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곡과 창뿐 아니라 효과음도 직접 만들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창극 ‘산불’ 현대적 무대와 이야기로 만난다
입력 2017-10-16 18:20 수정 2017-10-16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