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준비 평균 26개월·월 62만원 지출

입력 2017-10-15 18:56 수정 2017-10-15 22:11
3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이모(28)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자취방 월세로 35만원, 학원 수강료로 30만원을 낸다. 고정 지출금만 65만원이다. 수험생활 초기보다 강의를 줄여 이 정도에 맞췄다.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월 100만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마음을 돌렸다. 공부에 방해돼 수험기간만 늘어난다는 조언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이씨는 15일 “서른 다 돼가는 나이에 몇 년째 부모님 돈을 받다 보니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며 “스스로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플랜 B’를 마련하기 어려운 것도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는 힘겨운 고민이다. 김모(28)씨는 지난해 9급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3년 안에 합격하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그 안에 합격하지 않으면 시험을 그만두고 어디든 취직할 생각이었다. 이미 나이가 차서 민간기업 취직이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적 고민이 발목을 잡았다. 졸업 후 시험공부에만 ‘올인’한 김씨는 그야말로 ‘무(無) 스펙’이고, 그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기간은 자기소개서에서 ‘공백’에 불과하다. 경쟁률이 나날이 치솟는 기업 입사를 위해서는 인·적성테스트를 새로 준비해야 한다. 김씨는 “공무원시험은 안 될 가능성이 큰데 그렇다고 다른 길을 생각하기도 어렵다”며 “그만큼 압박감이 커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 합격자들은 시험 준비기간 중 주거비·식비·학원비·용돈 등으로 월평균 62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고시촌’에서 혼자 지내면 월평균 지출비는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사혁신처와 함께 이런 내용이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발표된 ‘공무원시험 준비 실태조사’에는 최근 3년 내 임용된 5·7·9급 공무원 1065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전체 수험기간 동안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61만9000원이었다. 70.6%(677명)는 수험기간 중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등 비정기적인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신 ‘가족 등 지원’을 통해 비용을 조달했다고 답한 비율이 71.2%(683명)에 달했다. 평균 26.6세에 시험 준비를 시작해 최종 합격하기까지 평균 2년2개월이 소요됐다. 최종 합격한 직급의 시험에 응시한 평균 횟수는 3.2회였다.

민간기업 채용과정과 동떨어진 공무원시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43.3%(402명)는 공무원시험 준비와 민간기업·공공기관 취업준비 간 호환성 강화에 대해 ‘필요하다’ 또는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무원시험에 투자되는 돈과 시간을 따져보면 낭비가 너무 심하다”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연 김남중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