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고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며칠 전 서울 시민 박춘덕씨로부터 그의 딸 관련 사연을 접하고서 든 생각이다. 박씨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9일 서른 한 살의 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8월 9일 난소암 수술을 받고 두 달이 채 안 됐다. 그의 딸은 7월 말 배가 아파 인천의 모 대학병원을 찾았고 난소암 판정을 받아 곧바로 암 제거 수술을 했다. 의료진은 수술이 잘 됐고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으면 잘 될 거라고 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1주일 머물렀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 1주일을 입원했다. 그런데 8월 29일 갑자기 졸도해 중환자실로 다시 옮겼고 그 과정에서 딸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이라는, 발음조차 어려운 다제내성균(3개 이상 항생제에 듣지 않는 일종의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도 1주일 뒤 딸을 다른 암 치료 전문병원으로 옮길 때 진료의뢰서를 통해서였다. 암 수술 병원에선 어디서 어떻게 감염됐는지 일절 말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다제내성균 치료에 애를 먹어 정작 필요한 항암치료는 손도 못 댔다.
암을 치료하러 갔던 딸은 결국 암보다 더 치명적인 감염병에 발목 잡혀 짧은 생을 마감했다. 부지불식간에 딸을 잃은 아버지는 인터넷을 뒤져 CRE에 대해 찾아봤다. 국민일보 기사 ‘느린 쓰나미… 항생제 내성균의 역습’(8월 1일자 11면 참조)’을 보고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딸 사례를 통해 항생제 내성균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박씨는 암 수술 병원을 상대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냈다. 딸의 다제내성균 감염이 암 수술 중에 일어났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염된 수술 도구나 수술장 및 중환자실 환경, 의료진 등을 통해 옮았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느리게 움직이는 쓰나미’로 규정한 항생제 내성균은 이처럼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빠르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병 고치러 병원 갔다가 되레 더 무서운 병균을 얻어 생명을 잃는 황당한 일은 앞으로 흔한 일상이 될지 모른다. CRE 같은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들이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고 확산 속도 또한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년)을 발표했지만 시행은 걸음마 단계다. 병원들도 감염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미흡하다. 내성균 감염에 대해 쉬쉬하기 십상이고 감염 경로를 환자나 가족들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이름조차 생소한 항생제 내성균에 국민들은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
“암 환자의 경우 내성균에 걸려도 의사가 암이 독해서 죽었다고 하면 가족은 그런 줄 알고 그냥 울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박씨의 절규는 비단 그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CRE와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알균(VRSA) 등 2종을 3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모든 의료기관이 의무 신고토록 했지만 그 외 내성균의 감시체계는 허술하다. 특히 병원에서 흔한 내성균 감염 루트인 ‘수술 감염’에 대한 감시가 허술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의료법상 재사용 수술 도구의 경우 멸균·소독 지침을 따르도록 의료기관에 안내하고 있지만 가이드라인 수준이어서 시행 및 보고 의무가 없다. 그렇다 보니 소독·멸균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수술 도구를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언론 보도 등을 계기로 이뤄지는 당국의 ‘사후 약방문식’ 점검은 그때뿐이다.
세계적 석학 미국 재러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저서 ‘총·균·쇠’에서 “질병(병원균)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역사상 전쟁보다 세균으로 숨진 인구가 훨씬 많다. 진화하는 항생제 내성균은 현 인류에게 큰 보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뉴스룸에서-민태원] 암보다 무서운 항생제 내성균
입력 2017-10-15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