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 보여도 누군가에겐 세상”…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 리뷰

입력 2017-10-16 05:00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한 장면. 현태와 동교가 고추 복장을 입은 채 "옥상 밭 고추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201호 아줌마는 사과하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경찰과 이웃들도 현장에 나와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하찮아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겐 세상이다. 어떤 이에겐 강아지가 세상이고 또 다른 이에겐 옥상 밭에서 기르는 고추가 세상이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모두 다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의미라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같은 하늘아래 살지만 다른 가치로 끊임없이 대립하는 이웃의 일상은 여러 물음을 던진다.

지난 13일 개막한 서울시극단 창작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재개발을 앞둔 빌라 304호의 광자(문경희)가 옥상 밭에 심은 고추를 201호 현자(고수희)가 몽땅 따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단순히 고추를 탐냈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양. 충격 때문인지 광자는 쓰러지고 301호 청년 현태(이창훈)는 이를 재건축과 관련한 사회 문제로 여긴다. 심지어 현자의 언행을 “일종의 살인”이라고 지적한다. 303호 동교(유성주)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옥상 밭 고추 사건’을 다루는 이웃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현태와 동교처럼 적극적으로 남의 일에 개입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지영(최나라)처럼 자신의 교수 임용에만 관심 있는 인물,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일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현태 엄마 재란(백지원)도 있다. 이웃의 일에 전혀 관심 없이 슬리퍼만 끌고 다니는 성식(신정웅)도 현태와 대조된다. 타인에 무관심한 인물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입하는 인물은 극 중 계속 겹쳐 보인다.

작품은 서울시극단 단장 김광보 연출과 장우재 작가의 11년 만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다. 장 작가는 “독일 사회운동가 페트라 켈리가 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던지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김 연출은 “지난해 광장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사이 격렬한 갈등과 단절된 모습이 무대 위에 투영됐다”라며 “일상 속에 사회·정치적인 우리의 모습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작품의 부제는 ‘윤리(Ethics) vs 도덕(Morals)’. 비슷해 보이는데 무슨 차이일까. 작가는 “도덕과 윤리를 구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도덕은 사회유지를 위해 옳은 것이라면 윤리는 개인이 스스로 무엇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지 정해 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약속과 개인의 기준이 혼재되고 충돌하는 상황을 다룬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