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전략자산을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에 올인하는 김정은의 광기가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김정은이 기어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발사한다면 미국의 군사옵션 사용은 예정된 수순일 것이다. 핵항모 전단과 핵잠수함의 한반도 해역 집결은 ‘엉망진창(mess)’ 북핵 유산을 임기 내 해결하겠다는 트럼프의 결단을 보여주는 증거다.
문제는 중국의 대응이다. 미국이 북 도발에 맞서 군사조치를 취할 경우 중국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최근 북·중 관계가 갈등 양상을 보이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은 북한을 ‘순망치한·혈맹’ 개념에서 벗어나 자국 안보에의 ‘부담’으로 보기 시작했고, 북한은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기회주의적 태도로 미·북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역사적으로 북·중 관계는 ‘적대적 동맹’이라 불릴 만큼 애증(愛憎)이 얽힌 이율배반 성격을 지녔다. 6·25전쟁 시 중국의 유격전술에 대한 김일성의 거부 반응, 문화혁명 기간 중의 ‘좌경 맹동’ 대 ‘수정주의’ 충돌, 중·베트남 전쟁을 통해 북한이 알게 된 중국의 강압적 패권 면모, 한·중 수교 시 극에 달했던 불신 등이 구체적 사례다. 북한의 중국 인식을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배신’이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년 북·중을 결속시킨 것은 ‘반미·반패권’의 전략적 공감대였다. 그러나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이 유대가 흔들리고 있다.
지금처럼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중국은 종래의 북한 지지 전략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중국이 미국의 북한 공격을 저지할 군사적 힘이 부족하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군사옵션에 정면 대항하는 것보다 이에 편승하는 편이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이 중국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도 방치할 수 없다. 옌볜 일대 주민들이 6차 핵실험 여파로 인한 인공 지진에 놀라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풍계리 핵실험장으로부터 불과 110여㎞ 떨어진 백두산이 핵실험 결과 폭발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북핵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미국의 북한 공격 시 중국군이 동시에 진입해 북한 북부 지역을 확보해 새로운 ‘완충지대’를 구축한다면 종래의 한·미 견제 전략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미 4월 위기 때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더라도 한·미 연합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일본 도쿄복지대 엔도 호마레 교수가 ‘미·중이 함께 군사공격해 김정은정권을 붕괴시킨 후 중국이 지분을 확보하려 한다’고 추정한 것은 북한의 장래 시나리오에 깊은 함의를 던진다.
이와는 정반대 시나리오로 미·중 간 전격적인 대타협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대국 정치 빅딜의 신봉자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나 조언을 구한 것은 우리에겐 적신호다. 중국이 김정은정권을 붕괴시키는 대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그는 평화란 강대국 간 힘의 균형과 합의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1973년 미·북베트남 파리평화협정의 주역인 그의 등장은 동북아 국제질서의 파란을 예고한다. 북핵 옵션이 고갈된 상황에서 군사옵션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을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의 결단이 나올 공산이 크다.
한국이 과거 청산 등 내부 정쟁에 몰입돼 있는 동안 바깥 세계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반도 정세는 우리의 통제 범위 밖으로 멀리 가 있을지 모른다. 분단된 채 열강의 각축 속에 놓인 우리가 안보를 지키면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길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자유민주·가치동맹으로 함께 가는 것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군의 지원을 고마워하지 않나”라는 언급이 나온 배경을 되새겨봐야 한다.
홍관희(고려대 교수·북한학과)
[한반도포커스-홍관희] 미·중의 ‘북한 빅딜’ 시나리오
입력 2017-10-15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