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집단지도체제’ 신호탄?… ‘총수 공백’인데 권오현 전격 사퇴

입력 2017-10-14 05:03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발표한 13일 권오현(사진) 부회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해 재계 전체에 큰 충격파가 일고 있다.

권 부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문 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및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만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권 부회장의 사퇴 배경은 ‘세대교체’다. 권 부회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산업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 할 때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계는 삼성전자가 처한 총수 부재 상황을 감안할 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올해 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수감됐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까지 물러나 경영 공백이 심화된 상황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매출,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3개 부문 모두 신기록을 세우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경영 책임을 물을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권 부회장은 “저의 사퇴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이완된 조직을 추스르고, 참신한 내부 인사를 후임으로 추천해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스스로 고민을 했다면서 “조만간 이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결심을 전하며 이해를 구할 예정이고 후임자도 추천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사퇴에는 이 부회장의 옥중 의중이 이미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집단지도체제를 꾸릴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이 부회장 수감 이후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상황에서 기존 미전실의 순기능은 살리되 과거 폐단은 없애는 조직을 띄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글로벌 전문경영인을 불러 그룹을 맡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언제든지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총수 부재임에도 불구하고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만큼 권 부회장 사퇴를 계기로 전문인 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이 부회장은 2선으로 물러나 대주주로 남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