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처럼 리얼한 수양버들이 캔버스 화폭 위에 어지럽다. 화가의 솜씨가 놀랍다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공성훈 작가의 그림이니 그런 생각이 들 만하다. 실은 컴퓨터가 짜깁기한 나무 이미지를 보고서 유화로 그린 것이다. 현실의 나무는 아니다.
미술관에 가서 진짜 놀이, 가짜 놀이를 해보면 어떨까.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포스트모던 리얼’전을 소개한다. 제목이 난해해 주눅들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재밌는 전시다. 모더니즘에서는 모든 것의 경계가 확고했다. 1990년부터 불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경계를 허물었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모호해졌고, 가상현실이 갖는 힘도 세졌다.
전시장 곳곳에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게임하는 듯한 작품들이 산재해 있다. ‘동물의 왕국’을 보여주는 김범의 영상작품 ‘볼거리’는 한참 넋 놓고 보다 순간 깔깔 웃게 된다. 표범이 영양에게 허겁지겁 쫓겨 가는 장면이 나온다. IT 기술 덕분에 가능한 ‘약육강식의 통쾌한 전복’이다.
정연두 작가의 ‘로케이션’ 시리즈는 전시 공간에 매화나무 등 약간의 소품을 놓아 마치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을 낸다. 하지만 먼 산 풍경이 아련히 보이는 이곳은 그 자체가 리얼한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 인생은 불완전한 세트장’이라는 주장을 드러낸다.
용산전쟁기념관의 부둥켜 앉은 ‘형제의 상’을 차용한 영상 작품 ‘하이퍼리얼리즘-형제의 상’은 형과 동생을 떼 내 둘이 빙빙 돌며 왈츠를 추게 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조롱한다. 이종상 김호득 황재형 한운성 등 참여 작가의 진용이 쟁쟁하다. 다음 달 2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어느 게 진짜, 어느 게 가짜일까? 서울대미술관 ‘포스트모던 리얼’전
입력 2017-10-15 18:41 수정 2017-10-15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