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외부로부터 위협’ 사례 폭로 이어진 대법원 국감

입력 2017-10-13 05:00
김명수 대법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2일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를 집중 점검했다. 법사위원들은 그간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낳은 내외 요인들을 거론하며 재판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느냐고 거듭 물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이 외부의 힘에 의해 위협받았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자신이 저축은행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확정 판결받은 사안과 관련해 “청와대가 대법원 측에 항소심 선고 그대로 유죄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등을 보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보내 이같이 요구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이어 “박 전 처장이 당시 ‘대법원의 판결, 대법관의 판결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면서도 대법원이 청와대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설명에는 반색했다. 김 처장은 “외부에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들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런 시도는 실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에 청와대가 대법원 측에 사건청탁을 한 정황이 적혀 있다고 폭로했다. 수첩에 ‘권순일 대법원에 message(메시지)’ ‘CJ 이재현 회장 권순일 대법관 파기환송 재상고’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모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이 회장의 재상고심은 대법원 3부에 배당됐고 주심은 권 대법관이었다. 김 처장은 국감 도중 권 대법관에게 직접 확인한 뒤 “본인은 ‘안종범을 알지도 못하며 수첩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력하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지키고 있느냐는 추궁도 있었다. 그간 일선 법관들 틈에서는 판결 시 ‘윗선’을 의식해야 하는 등 재판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문제의식이 컸다. 김 처장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많은 법관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며 심각성을 인정했다.

법사위원들은 법관의 양심을 해치는 것으로 지목돼온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감 시작부터 “파일이 보관된 의혹이 있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의 해당 컴퓨터를 현장조사하자”는 제안이 나올 정도였다. 김 대법원장은 국감 마무리 발언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 여부와 방법을 곧 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6일부터 진상조사위원들을 비롯한 일선 법관들과 순차 면담하고, 26일 대법관회의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을 들어 신중히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