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정순관] 지방분권 확대가 시대적 과제다

입력 2017-10-11 18:06

20세기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식의 변화다. 중앙정부의 획일적 접근이 퇴색하고 지방 중심의 분권적 접근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고 이러한 사회 변화에 걸맞은 국정관리체제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규칙이 기존의 ‘합산적(collective) 혹은 분배적 선택법칙’에서 각 행위 주체들이 참여해 대화를 통해 공동체 이익을 구성해내는 ‘구성적 선택법칙(constitutive choice rules)’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는 누가 무엇을 갖느냐에, 후자는 누가 권력을 행사하고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주로 관심이 있는 입장이다. 후자의 관점이 바로 현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 내용이 되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중심이 ‘목표달성의 능률성’에서 ‘민주적 관리법칙의 질’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 공포와 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 제정·공포로 시작됐고 4·19혁명, 5·16군사정변, 87년 6·29선언 등을 거치면서 제도적 틀이 진화해 왔다.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두 가지 특징은 독재권력에 대한 견제와 중앙 의존적 대응이라는 점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독재권력을 종식시키는 핵심적 대안이었다는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중앙부처가 중심이 돼 추진되면서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

권력 집중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지방자치제도 도입 배경과 중앙 의존적 제도의 개혁 추진은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의 추진 방향을 중앙에 대한 지방의 민주적 통제영역 확장에 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했고 형식과 절차에 대한 요구에 집중하게 했다. 이러한 배경은 지방자치를 위한 제도적 개혁에 공헌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특징을 형식적 자치, 갈등적 자치, 획일적 자치, 의존적 자치 등으로 자리 잡게 하는 원인이 됐다.

현대적 의미의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후 68년이 흘렀다. 지방자치제도의 확대와 강화는 권력 집중의 견제 외에 21세기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가고 있고 지방분권 추진 방향에 새로운 메시지를 주고 있다. 지방분권은 중앙의 행정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정도를 말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자체가 그 지역에 관한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집행하며, 지방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존중돼야 내실 있는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 지방분권의 추진은 단순히 형식과 절차 개선,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주민 입장에서 무엇이 좋아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향후 한국 사회는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많은 사회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또 복지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재정 압박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실화돼가는 경기 침체는 문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은 없지만 행위 주체들이 문제를 공유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공유된 가치에 대한 대화의 결과가 바로 힘의 원천이고 공익이다. 지방분권을 통해 공유와 대화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 메커니즘의 방향이 공공행정에 대한 관심을 중앙 주도적 공급자의 편견에서 지방의 수요자를 함께 고려하는 제도적 다면화로의 이동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통제적 능률성 중심의 국정운영체제에서 지방이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민주성 중심의 국정운영체제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정운영체제가 필요한 때이며 유력한 대안은 지방분권 확대와 소통 강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정순관 지방자치발전委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