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 1년6개월… 투자도 수익도 초라한 성적

입력 2017-10-11 05:00

냉철한 ‘투자로봇’이 내 돈을 관리해주는 시대는 어디까지 다가왔을까. 일명 ‘로보어드바이저’로 불리는 자동화 투자수단(Automated Investment Tool)은 금융 당국 지원 아래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기대치에 비해 로봇을 활용한 투자는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수익률도 뛰어난 수준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선 로보어드바이저의 한계를 보완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각광받는 건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중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데다 맞춤형 자산관리를 해줄 수 있어 금융업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다. 독일 시장조사 기관 스타티스타는 전 세계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2015년 약 660억 달러(75조2000억원)에서 2021년 1조 달러(1139조6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 자문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를 내세운 것도 이런 흐름에 발맞추려는 차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로보어드바이저의 성적표는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10일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8개 자산운용사가 운용 중인 24개 로보어드바이저 공모펀드 가운데 12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투자 원금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는 펀드매니저가 로보어드바이저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산을 운용한다.

사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성적’보다 ‘성장’을 고민해야 할 단계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운용을 완전히 도맡는 ‘일임형 서비스’의 성적표는 선진국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시장 규모는 346억원, 가입자는 260명에 그친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국내에서 비대면으로 투자일임 계약을 맺는 게 금지돼 있다. 고객이 금융회사 창구에 직접 찾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만의 강점인 가격경쟁력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로보어드바이저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 상품)는 30개나 출시됐지만 가입자는 115명뿐이다.

은행권에선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NH농협은행 등이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하고 있다. 다만 은행에는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외에 투자일임을 허용하지 않는 탓에 서비스 폭이 제한적이다. 은행들은 로보어드바이저가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 고객이 이를 선택해 일괄 매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일임형 ISA에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고 있지만 비중이 워낙 작다.

금융위는 지난 4월 종료된 1차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에 이어 2차 테스트베드를 다음 달까지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업계는 규제 완화를 해야 이런 지원책이 효과를 본다고 꼬집는다. 금융위는 아직 산업 자체가 초기인 만큼 규제 완화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성장을 하더라도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박선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는 부유층 이하의 고객이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고액자산가를 공략하기 위해선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투자자문 서비스를 해야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역부족”이라면서 “고액자산가 중심의 휴먼어드바이저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정착된 선진국에선 ‘하이브리드 모델’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전문 인력이 일정 부분 개입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가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순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로만 운영하던 기존 업체들도 빠르게 하이브리드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 서비스 중심으로 시장 재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