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0·10’ 잠잠… 도발효과 극대화 시점 노리나

입력 2017-10-11 05:00
우리 군 병사들이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부근의 휴전선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맞은편 북한군 초소에 인공기와 인민군 육군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파주=서영희 기자

‘10·10절’(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 도발은 없었다. 북한은 당 창건 72주년인 10일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 매체들은 여러 나라에서 경축행사가 열렸다는 소식만 전할 뿐 잠잠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이르다. 북한이 국제 정세 등을 고려해 도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언제든 버튼을 누를 것이라는 게 정부와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도발 날짜를 특정한 적은 없다”며 “10일이나 18일은 우리 정부가 다소 작위적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했을 경우 후폭풍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수 있다”며 “북한은 중국의 당 대회 이후 움직임도 보고 판단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공개적으로 추가 도발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직접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당 창건일은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4월 15일)·김정일 국방위원장(2월 16일) 생일, 정권 수립 기념일(9월 9일)과 함께 국가적 명절로 기리는 날이다. 창건 70주년이던 2015년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고, 김 위원장이 직접 연설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한 이후로 외부 활동이 뜸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전원회의의 첫 번째 의제를 ‘조성된 정세에 대응한 당면한 과제’로 제시한 건 김 위원장이 현 상황을 긴박하고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제재’라는 표현을 다섯 번 썼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조성된 정세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 ‘일심단결’을 외치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경제 라인 재정비도 눈에 띈다. 태종수 전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 안정수 당 중앙위 부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위원장 등 경제 관료들이 중앙위 부위원장에 임명됐고, 이주오 내각 부총리는 당 중앙위원에 기용됐다. 지난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 총비서 추대 기념 중앙경축대회에서 경제 사령탑인 박봉주 내각 총리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보다 앞서 호명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연구원은 “제재 국면에서의 지구전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또 이번 인사에서 실세로 떠오른 박광호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의 천거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박광호는 선전 담당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에 기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경축대회 때 박광호의 주석단 서열은 정치국 상무위원 바로 다음이었다. 이는 이번에 물러난 김기남의 후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박광호가 맡은 경축대회 사회는 김기남이 해오던 역할이다.

이용호 외무상의 정치국 입성 역시 이례적이다. 외무상이 정치국 위원을 겸직한 사례는 김일성 주석 시절엔 있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에는 없었다. 미국, 중국과의 고위급 접촉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