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 지친 영육 보듬는 ‘오아시스’ 운영

입력 2017-10-11 00:00
태국 방콕에 있는 오아시스힐링센터 전경. 황정신 선교사 제공
황정신 선교사가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 노원역 인근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선교사를 위한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자창 기자
태국 방콕에는 지친 선교사들을 위한 ‘오아시스’가 있다. 가족 갈등, 우울증, 번아웃증후군(극도의 정신적 피로감에 의한 무기력 증세)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교사들이 이곳 오아시스힐링센터(오아시스센터)를 찾아 지친 영육을 재충전하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오아시스센터를 만들어 디브리핑(Debriefing)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황정신(59·여) 선교사를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 노원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디브리핑은 뭉친 걸 풀어낸다는 의미로 선교지에서 지친 선교사들을 돕는 사역을 뜻한다.

황 선교사는 2015년 4월 네팔 지진 때 큰 충격에 빠진 현지 한인 선교사들을 디브리핑 사역을 통해 도왔다. 당시 네팔에서는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나 8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건물이 무너졌다.

현지 선교사들은 지진 복구 작업을 하면서도 여진이 언제 발생할지 몰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지진 발생 직후, 네팔로 날아간 황 선교사는 4박5일간 20여명의 선교사와 가족들을 만났다. “복구 작업도 중요하지만 선교사들을 먼저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 복구와 교회 재건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던 선교사들은 황 선교사를 만나 자신들 역시 심한 충격을 받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황 선교사는 ㈔한국위기관리재단과 협력해 지원금을 모았고 지진 발생 직후 네팔 선교사 열일곱 가정을 방콕 오아시스센터로 초청했다. 황 선교사는 “사고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를 여유롭게 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아시스 디브리핑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오아시스센터에 오는 선교사와 가족들은 3박4일 일정 동안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원칙을 교육받는다. 해야 할 것은 많이 먹고, 많이 자고, 많이 말하기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청소, 빨래, 설거지, 일찍 일어나기다. 식사시간은 꼭 지켜야 하고 대화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처음 어색해하던 이들은 점차 적응하면서 속에 쌓였던 응어리를 털어놓는다.

선교사 자녀 A씨는 대인기피증과 우울감에 시달리다 오아시스센터를 찾았다. A씨는 “나만 없어지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가족들에게 자주 말했다. 그는 많이 자고 많이 말하라는 오아시스의 원칙을 듣고 처음엔 장난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아시스센터에 머물면서 상처가 아물었다. 가족과의 어려웠던 관계도 대화를 통해 회복하기 시작했다. 황 선교사는 “오아시스 행동원칙을 처음 들으면 다들 황당해한다. 하지만 곧 마음의 빗장을 풀고 속 얘기를 꺼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황 선교사는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으로 1987년부터 방콕에서 남편 강대흥 선교사와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 2006년 남편의 GMS본부 사역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2007년 49세라는 늦은 나이로 총신대 선교대학원에서 치유상담을 공부하며 디브리핑 사역에 눈을 떴다.

선교현장 곳곳에 선교사들이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가 늘어나는 게 황 선교사의 소망이다. 그는 “선교사들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일은 소박해보이지만 꼭 필요하다”며 “해외 곳곳의 선교사들에게 쉼을 제공할 수 있는 상담센터가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