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엔 ‘동물당’이 있다… “인사검증 때 ‘동물권리’ 따져”

입력 2017-10-11 05:02
마리안느 티메 네덜란드 동물당 대표. 뒤쪽 지구를 배경으로 한 사진 위에 동물당이 네덜란드어로 표기돼 있다. 동물당 제공
네덜란드 동물당이 지난 4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한 기후 행진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채식을 하면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는 푯말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고기 없는 월요일’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마리안느 티메 동물당 대표. 동물당 제공
네덜란드엔 ‘동물당’이 있다. 말 그대로 동물의 권리 증진을 위한 정당이다. 2002년 창당된 동물당(PvdD)은 “다음에는 ‘식물당’ ‘자전거당’도 나오는 거냐”는 비아냥을 뒤로 하고 2006년 상원 2석, 하원 2석을 차지하며 원내에 진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얻었다. 동물당은 지난 3월 총선에선 상원 71석 중 2석, 하원 150석 중 5석을 얻었다. 지역의회 49석까지 합치면 50석이 넘는 의석을 갖게 된 것이다.

15년 전만 해도 세계에 하나뿐이었던 동물당은 지금 미국 대만 포르투갈 등 19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 동물당이 모인 동물정치협회(Animal Politics Foundation)는 정기적으로 총회를 열고 반자본주의, 전쟁반대, 기후변화 등에 대해 논의한다.

지난달 13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의회건물에서 만난 마리안느 티메(45) 동물당 대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새로운 사회 운동’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NGO에서 정치까지

동물복지나 동물권리는 대개 시민단체나 사회운동가가 관심을 갖는 주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국에도 관련 단체는 있지만 아직 정치 영역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동물당은 최초로 ‘동물권리’ 의제를 정치에 들여놓았다. 동물권리가 정치의 영역에 들어온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티메 대표는 “우리는 다른 정당이 동물 친화적인 법안을 내는 데 동조하도록 압박하고 인사검증 때 동물권리 등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따져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물당은 직접 정치권력을 얻는 것보다 정치활동을 통해 다른 당과 의회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네덜란드에 다당제가 자리를 잡은 것도 동물당이 의석수에 비해 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다. 정당간 협치가 필수적인 다당제 속에서 동물당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 의제를 던지고 이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환경 그 자체의 가치를 위해 환경을 보호한다”

동물당은 단순히 동물만을 위한 정당은 아니다. 동물권리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와 경제, 먹거리 문제 등의 어젠다를 제시한다. 동물당은 현재의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현 체제가 동물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생명체, 나아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전 세계를 달군 살충제 계란 사태나 대규모 공장 사육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한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림들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게 이들의 목표다. 티메 대표는 “포크와 나이프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가진 강한 무기”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지속가능한 세상과 관련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과도한 육류 소비를 줄이자는 것도 동물당의 주장 가운데 하나다. 선진국의 높은 육류 소비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가야 할 곡식이 가축 사육에 쓰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티메 대표는 “현 경제체제 하에선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자원이 배분돼 굶주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며 “시민 한명 한명이 육류 소비를 줄이면 해결해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기존 정당이 ‘사람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것도 비판한다. 여기서 녹색당과 차별화된다. 티메 대표는 “녹색당도 결국 사람의 삶의 질을 증진하는 수단으로서 환경 보전과 자연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사람 중심 사고를 지우고 자연 그 본래의 가치를 인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신념을 고수한다

동물당의 주장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이는 데도 대중의 호응을 얻는 이유는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에 대해 오랜 시간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동물당이 창당 후 걸어온 길도 ‘동물권리 증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법안 마련에 집중돼 있다.

2014년엔 모피 생산을 위한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엔 서커스에 동물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 트로피 헌팅(재미삼아 동물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다.

종교적 도축 금지도 동물당이 제기한 이슈 중 하나다. 종교의식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은 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잔혹한 일이라는 문제제기였다. 오랜 시간 용인돼 온 전통을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닭 사육을 위한 배터리케이지 사용을 금지하고 동물 도축장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이들이 추진할 예비법안들에 포함돼 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 도입과 육식 대체용 식품을 만드는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야생동물 거래에 더 강력한 처벌을 하게 하는 것도 역시 추진 중이다.

“플래닛B(다른 지구)가 없기에 플랜B가 필요하다”

3월 총선에서 5석이나 얻은 것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에 시사점을 던졌다. 티메 대표는 동물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동물의 권리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신장’을 가장 먼저 꼽았다. 대중 속에 ‘대안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심어온 것도 주효했다. 티메 대표는 국정연설 등을 할 때마다 대중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의상을 입는다.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탄띠에 총알 대신 당근을 채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존 정치에 불신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티메 대표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기존 정치에 질리면 투표를 아예 안 하든가, 포퓰리즘 정당을 찾곤 했다”며 “우리는 이들에게 ‘진실된 가치’라는 제3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동물당의 슬로건은 ‘플래닛B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플랜B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플래닛A) 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다른 행성(플래닛B)은 없으므로 플랜B를 선택해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는 길이 인류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의미다. 동물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이 한마디에 집약돼 있는 셈이다.

헤이그(네덜란드)=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