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 유전자변형작물(GMO) 재배면적은 4배 이상 늘었다. GMO가 증가하면 GMO 오염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바람, 곤충을 통해 전 세계 곳곳에서 GMO가 생태계로 유출됐다. GMO 섭취가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를 떠나 GMO 오염은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GMO 아닌 식품을 섭취할 권리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GMO 오염이 불러온 권리 전쟁
호주 서부 지역 유기농 농부 스티븐 마시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GM(유전자변형) 카놀라 농장과 20m 떨어져 있던 마시씨의 귀리 농장은 2010년 GM 카놀라 씨앗에 오염됐다. 식량안전재단(SFF)의 스콧 키니어 대표는 이를 ‘물리적 오염’이라고 표현했다. 귀리와 카놀라는 종이 다르기 때문에 교잡(交雜)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수확할 때 섞일 수 있다.
당시 호주의 유기농 기준상 유기농 인증을 받은 작물에는 GMO가 조금도 섞이면 안 됐기 때문에 그는 인증을 빼앗겼다. 하지만 비의도적인 GMO 혼입에 관대한 유기농 기준을 적용하는 국가였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마시씨가 재판을 벌이던 당시 GMO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호주의 유기농 기준이 너무 빡빡하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수분(受粉)으로 인한 오염이다. GM과 Non-GM인 같은 종의 작물을 키울 때는 교잡이 가능하다. 마시씨는 당시 GM 카놀라를 키웠던 이웃 농부가 Non-GM 카놀라도 함께 키웠다고 했다. 두 농장 사이의 거리는 5m에 불과했다. 만약 마시씨도 귀리가 아닌 카놀라와 같은 십자화과인 배추나 브로콜리를 키웠다면 종속 간 교잡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원치 않게 변형된 유전자가 포함된 배추나 브로콜리가 탄생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마시씨는 “농부가 키우고자 하는 작물과 GMO가 교잡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몬산토가 시장을 독점하게 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할 권리가 침해당하는 문제도 있다. 기자가 마시씨의 농장을 방문한 날 이웃 농장에는 노란 카놀라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마시씨는 이 카놀라가 GMO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는 “소송에서 진 이후 이웃 농가에서 GM 카놀라를 키우는지 아닌지 말해줄 의무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GMO 오염 이후 특허권을 침해한 혐의로 농부가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20년 전 캐나다에서는 Non-GM 카놀라를 재배하던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 날아온 GM 카놀라 씨앗 때문에 법정에 서야 했다. 당시 GM 카놀라 씨앗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몬산토캐나다는 자사의 씨앗을 허가 없이 재배했다고 농부를 고발했다. 7년간 다툼 끝에 법원은 몬산토의 특허권이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SFF의 스콧 키니어 대표는 “스티븐씨의 경우 날아온 GM 카놀라를 수확하지도 않았고 사용하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특허권 침해가 인정된 캐나다 사례와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시씨는 “몬산토가 GM 카놀라 씨앗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농장에 날아온 씨앗을 수거해 없애버려도 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GMO 오염이 권리의 문제라고 했다. 마시씨는 “만약 내가 키우는 양이 다른 곳에서 해를 끼친다면 내가 보상해주는 게 관습법”이라며 “유독 GMO에선 이 원칙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소송에서 이겼다면 GMO 씨앗을 판 회사는 주위에서 넘어온 GMO로 피해를 입은 모든 곳에 배상해야 했을 것”이라며 “그게 내가 이길 수 없었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한국에서도 마시씨와 같은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지난 5월 강원도 태백 유채꽃 축제장에서 미승인 GM 카놀라 종자가 발견됐다. 몬산토사의 라운드업레디(Roundup Ready·제초제 ‘라운드업’에 저항성을 띠도록 변형됨) 카놀라였다. 공식적으로 GMO를 재배하지 않는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조사에 나선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부터 수입된 중국산 유채 종자 79.6t 중 32.5t에 GM 카놀라가 혼입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카놀라는 유채의 일종이다.
농식품부는 미승인 GM 카놀라가 발견된 지역에서 향후 2년 동안 유채가 재배되지 않도록 특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혹시 모를 GMO 오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2009∼2012년에도 국내 47개 지역에서 옥수수 면화 유채 등의 GMO가 유출됐다.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코존업(호주)=임주언 기자 eon@kmib.co.kr
◆호주 ‘시드세이버스네트워크’ 창립자 미셸 팬톤씨 부부
“토종 씨앗 지킴 30년… 소규모 농부들만이 할 수 있어요”
편지로 씨앗 담아 교환 방식… 9000가지 샘플 씨앗 보관
유전자변형(GM) 씨앗이 호주에 도입되기 수십년 전부터 토종 씨앗을 모아 온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2일 호주 바이런 베이에서 시드세이버스네트워크(http://seedsavers.net) 창립자 미셸 팬톤씨와 아내 주드씨 부부를 만났다.
이들이 처음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한 건 1986년이었다. 최초 유전자변형작물(GMO)인 ‘무르지 않는 토마토’가 개발되기도 전이었다. 팬톤씨는 당시 호주 정부가 외래종 씨앗 도입 허용 법안을 만들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팬톤씨 부부는 여기에 맞서 “편지로 씨앗을 담아 교환하자”고 농부들에게 제안했다. 토종 씨앗의 독자성을 지키며 널리 재배하려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이었다. 팬톤씨는 “그동안 9000가지의 샘플 씨앗을 받았다”며 “콩의 경우 우리는 800종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팬톤씨 부부는 토종 씨앗을 심어 재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팬톤씨는 “기후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씨앗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한 지역의 땅과 기후에 적응해 나가는데 계속해서 씨앗을 심어야 씨앗이 날씨의 변화를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주드씨는 정원에 나가 상추와 치커리, 콩 등 각종 채소를 뜯어 소쿠리에 담아 왔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씨앗을 심어 섭취하는 게 건강에도 더 좋다”고 했다. 팬톤씨 부부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등 전쟁이 났던 곳을 주로 찾았다. 팬톤씨는 “전쟁 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종자회사들이 들어간다”며 “그 전에 해당 지역을 찾아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서로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했다”고 했다. 이어 “사실 지역 농부들은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그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준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토종 씨앗 보존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GMO가 계속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GMO는 소품종 대량 생산을 추구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유전자를 변형한 소수의 씨앗만 사용하면 특별히 취약한 질병이 도래했을 때 종 자체가 전멸할 수 있다. 미리 다양한 종의 씨앗을 보존해놓지 않으면 종의 단순화가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팬톤씨는 한국 농부들도 토종 씨앗을 기르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규모 농부들만이 이런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다”며 “이미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자연친화적 농부들이 씨앗을 교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바이런 베이(호주)=임주언 기자, 그래픽=이은지 기자
[값싼 식탁, 비싼 대가] 바람·곤충 타고 유출… ‘GMO 안 먹을 권리’마저 침해
입력 2017-10-10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