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사고’ 원인은 도비탄 아닌 유탄… 사격통제 총체적 부실

입력 2017-10-09 22:36

진지공사 후 복귀하다 사격장 인근에서 총탄에 맞아 숨진 육군 6사단 이모(22) 상병(일병에서 1계급 추서)의 사망 원인이 유탄(목표물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사된 총탄)에 의한 것으로 최종 판명됐다. 또 당시 사격장에는 유탄 방호벽은커녕 경고표지판조차 없었고 인솔 간부는 총소리를 듣고도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등 군의 사격 통제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명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은 9일 브리핑에서 “이 상병은 인근 사격장에서 직선거리로 날아온 유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사고 원인은 병력인솔 부대와 사격훈련 부대, 사격장 관리 부대의 안전조치 및 사격통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본부는 사고 발생 직후 원인으로 거론됐던 도비탄(다른 곳에 맞고 튄 총탄)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사망 원인을 도비탄으로 추정했다. 이 상병의 몸 안에 있던 총탄 파편 4조각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다른 곳에 부딪히거나 이물질이 묻었던 흔적은 없었다. 이 상병 얼굴 우측 광대뼈에 난 사입구(射入口·총탄이 들어간 입구)도 둥근 모양이었다.

국방부는 직접 조준사격일 가능성도 배제했다. 이 상병이 총에 맞은 곳은 사로에서 약 340여m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는 조준사격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사격훈련을 하던 부대가 이 상병 소속 부대의 이동 계획을 알 수 없는 점, 사격하던 병사들이 이 상병과 개인적 원한은커녕 일면식도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

당시 사격장 인근에 있던 경계병들은 이 상병 소속 부대가 위험지역에 들어가는데도 제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처음 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사격훈련을 하러 간 사이 교체 투입된 병사들로, 첫 경계병과 달리 아무런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당시 경계병은 조사에서 “사람이 지나가는데 통제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인솔 간부도 있고 구체적인 교육도 못 받아서 통과시켰다”고 진술했다고 군 관계자가 전했다. 이 상병 소속 부대 간부들은 총소리를 듣고도 행군을 중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모 부소대장(중사)은 이동 중 부대원들이 듣도록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사격장 관리도 허술했다. 당시 사격장에는 사로에서 280m 떨어진 곳에 28m 높이 방호벽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 방호벽은 200m 거리에 있는 표적 사격을 기준으로 총구 각도가 1.59도를 넘어가면 무용지물이었다. 조사본부가 분석해보니 총구가 2.39도만 들려도 총탄이 방호벽을 넘어 이 상병이 총에 맞은 곳에 닿았다. 이 상병 피격 장소 근처의 나무 한 그루에서만 피탄 흔적이 70여개나 발견되는 등 유탄 위험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이 상병을 숨지게 한 총탄이 누구의 총에서 발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본부는 당시 사용됐던 K-2 소총 12정을 수거해 분석했지만 식별에 실패했다. 군 관계자는 “총탄을 확대현미경으로 보면 총열 내 강선을 지나면서 생기는 특이 흔적이 보인다”면서도 “이번에는 신체 내에서 마찰이 심하게 일어나 흔적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경계병에게 명확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당시 사격훈련을 하던 부대 최모 중대장(대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이 상병 소속 부대의 박모 소대장(소위)과 김 부소대장에게도 같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육군은 사고가 난 사격장을 폐쇄하는 한편 유사 사고 우려가 있는 사격장 50여곳의 사용을 잠정 중단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