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으로 버틴 ‘고혈압 감독’… 이집트, 28년만의 월드컵 본선

입력 2017-10-10 05:00
사진=AP뉴시스

헥토르 쿠페르(62·사진) 이집트 축구 대표팀 감독은 고혈압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이제 쿠페르 감독은 고혈압 약을 줄여도 될 것 같다. 이집트를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9일(한국시간) 알렉산드리아의 보그 엘 아랍 스타디움에서 열린 콩고와의 아프리카 3차 예선 E조 5차전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모하메드 살라의 활약을 앞세워 2대 1로 이겼다. 이날 승리로 4승 1패(승점 12)를 기록한 이집트는 조 2위 우간다(승점 8)를 승점 4점 차로 따돌려 남은 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국가대항전인 네이션스컵에서 최다 7회 우승을 달성한 아프리카의 강자다. 하지만 월드컵과는 깊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34·1990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에 올라 2무 2패에 그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집트는 2015년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페르 감독을 영입해 비원의 월드컵 본선에 도전했다. 강한 수비와 역습을 중시하는 쿠페르 감독은 인터 밀란(이탈리아), 발렌시아, 레알 베티스(이상 스페인) 등 유럽의 명문 클럽을 이끌었던 명장이다. 이집트의 언론과 국민들은 국가대표팀 경기 결과가 좋지 못하면 쿠페르 감독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쿠페르 감독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뒤 영국 언론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계속되는 비판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 약을 먹고 있다”며 “인생은 스트레스로 가득하지만 월드컵에 진출하는 도전은 내가 겪은 스트레스 중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집트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자 수도 카이로에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고, 경적을 울리며 기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선수 당 150만 이집트 파운드(약 1억원)의 포상금 수여를 지시했다.

한편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국가는 15개국으로 늘었다. 개최국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스페인·벨기에·잉글랜드·독일, 폴란드 등 5개국이 본선 티켓을 따냈다. 아시아의 한국·이란·일본·사우디아라비아, 북중미의 멕시코·코스타리카,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이집트, 나이지리아가 본선에 합류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