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조종묵 초대 소방청장 “소방의 뿌리는 현장… 작년 한 해 13만여명 구조”

입력 2017-10-10 20:00 수정 2017-10-10 23:51
조종묵 소방청장이 정부세종2청사 집무실에서 소방청 출범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밝히고 있다. 조 청장은 “모든 국민이 안심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실현하기 위해 소방조직을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고 재난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지훈 기자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119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국민들에게 소방청 출범을 알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일선 국기기관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서약하는 자리였다.

소방은 화재나 폭발·붕괴 사고 등 각종 육상 재난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 상황을 수습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조직이다. 화재출동 11만5465건, 구조출동 75만6987건, 구조인원 13만4428명, 구급출동 267만7749건, 이송인원 179만3010명 등 지난해 활동실적을 보면 소방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일선 소방공무원들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도 평상시처럼 교대 근무를 하며 현장을 지켰다. 소방은 이처럼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핵심조직이지만 그동안 걸맞은 위상을 갖지 못했다. 제복 공무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조직이 이원화돼 있고 독립기관이 된 것도 불과 2개월 전이다.

119비전 선포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 정부세종2청사 소방청장 집무실에 조종묵(56) 소방청장을 만났다.

-소방조직이 마침내 지난 7월 26일 독립기관인 소방청으로 새 출발했다. 소방공무원들의 숙원이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육상재난 발생 시 소방이 일차적인 대응기관이라는 위상을 인정받았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각종 사고, 재난, 그리고 응급상황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는 엄중한 시대적 명령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런 만큼 책임도 더 커졌다.”

-독립기관이 된 게 얼마만인가.

“내무부 경찰국에 속해 있다가 1975년 8월 소방국으로 분리된 것을 시점으로 치면 42년 만이다. 소방방재청,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를 거쳐 행정안전부 외청인 소방청으로 독립했다. 소방청 출범은 소방관들의 희생과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10년간 매년 5.6명의 소방관이 재난현장에서 순직하고 339명이 부상했다.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국민들이 소방을 응원해 준 덕분이다.”

-초대 소방청장으로서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 소방청을 출범시킨 것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라는 것 아니겠나. 무엇보다도 육상재난은 소방서장이 현장에서 책임을 지고 대응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소방의 뿌리는 현장이다. 현장 대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들이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겠다. 인력 충원, 장비 확충과 현대화, 소방관들에 대한 사기진작책 마련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소방업무는 하루아침에 잘할 수 없다. 오랜 시간과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돼야 한다. 급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주변을 잘 살피면서 작은 것부터 한발 한발 꾸준히 나아갈 생각이다.”

-119비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소방이 안전한 나라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선언이자 대국민 약속이다. 공평하고 따뜻한 119서비스 확대, 국민이 참여하고 함께 만드는 안전사회, 소방역량 강화를 위한 과학적 기반의 획기적 보강, 현장중심의 강력한 총력대응체계 구축 등 4대 핵심전략 아래 2027년까지 추진하고 달성할 20개의 세부추진 과제를 담았다. ‘초일류 안전강국, 최고 수준의 소방서비스 구현’이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소방의 역량을 집중하겠다.”

-지난달 17일 강릉 석란정 화재 때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 소방관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소방관들은 처참한 재난현장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적 장애와 화상, 근골격계 장애 등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전문적으로 치유하고 재활을 도울 소방전문병원 설립이 절실하다. 소방복합치유센터라는 300병상 규모의 소방전문병원을 2021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13개 진료과목, 4개의 센터(화상·근골격계·PTSD·건강증진), 1개의 연구소 규모로 계획 중인데 올해 적합한 부지를 선정하고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들과 협의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 전국 4개 권역별로 심리상담센터도 설치할 계획이다. 상담과 심리치료 등을 통해 PTSD 등을 치유하는 거점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열악한 근무여건 개선, 개인 안전장구 보급, 순직 및 공사상자에 대한 지원 확대 등 소방관들의 복지 및 권익 향상에도 꾸준히 힘을 쏟겠다.”

-재난대응 및 응급구조 활동 시 소방관의 면책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는데.

“화재진압이나 구조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않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소방관 개인에게 물으면 현장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중과실이 아니면 소방관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소방관 전용보험 도입을 추진하고 손해배상 소송이 발생할 경우 무료변론을 해 주기로 대한변호사협회와 MOU도 체결했다.”

-소방 인력 충원도 시급한 과제인데.

“인력 문제는 각종 재난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대응하는 소방공무원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고 현장업무의 효율성을 꾀하는 등 자구노력도 병행하겠지만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총 2만명의 소방인력을 증원할 계획이다. 법정 기준에 크게 부족한 현장대응 인력을 1만8000명가량 충원하고 소방특별조사(이전의 소방검사) 요원, 농어촌 구급대원, 강원도 산불대응 인력도 보강할 것이다. 계획대로 되면 현 정부 임기 내에 소방공무원은 6만4000여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노후 장비 개선은 잘되고 있나.

“2015년 도입된 소방안전교부세를 재원으로 노후했거나 부족한 소방장비 보강에 지난 3년간 총 8678억원을 투자했다. 노후 개인장비와 소방차량은 올해 말까지 100% 교체되거나 법정 대비 보유율 100%를 달성하게 된다. 내년 이후에도 소방안전교부세의 75%가 소방분야에 투입되기 때문에 장비 노후나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소방관들의 현장대응역량 강화도 중요한 과제일 텐데.

“어떤 사고가 단순 사고로 머물 것인지, 재난으로 확대될 것인지는 현장지휘관의 판단과 대처 역량에 달려 있다. 지휘관의 재난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휘역량강화센터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난현장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능력을 훈련함으로써 현장지휘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시설이다. 서울소방본부와 중앙소방학교에 설치돼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훈련 대상자가 초급지휘관부터 소방서장까지 총 7724명이라 이들이 모두 한 번이라도 이 훈련을 받으려면 현재 시설로는 10년이 걸린다. 지방소방학교가 있는 시·도에 2019년부터 우선적으로 센터가 설치될 수 있도록 시·도와 협의해 나가겠다. 소방서장을 대상으로 긴급구조통제단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현장 중심의 대응력량 강화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화재 진압이나 응급구조 활동 외에 생활안전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다.

“잠긴 문 개방, 벌집 제거 등 다양한 요청이 119에 접수된다. 그런 일까지 소방이 담당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국민들이 신고하면 응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은 안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고, 그 상황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출동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왜 그래야 하나.

“소방 업무를 지역에 상관없이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4만4121명인데 4만3583명(98.8%)이 지방공무원이다. 소방청 본부 조직과 시·도 소방본부장 등 일부(538명)만 국가직이고 나머지는 시·도지사에게 임명권이 있는 지방직이다. 소방공무원은 반복적인 훈련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요구되는 제복 공무원이다.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된 국가기관이 소방 말고 또 누가 있나. 시·도에 따라 소방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다르다. 소방 역량을 지역별로 균형 있게 강화하고 운영의 효율화를 기하려면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조종묵 청장은

소방간부후보생 6기로 1990년 2월 임용된 후 일선 현장과 정책부서를 두루 거친 정통 소방관이다. 경북 의성소방서장, 소방방재청 소방제도과장, 국민안전처 특수재난지원담당관·중앙119구조본부장·소방조정관, 소방청 차장을 거쳐 초대 소방청장에 발탁됐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인 데다 직원과 격의 없이 소통해 내부 신망이 두텁다는 평을 듣는다. 강릉 석란정 화재 소방관 순직사고 때도 당일부터 영결식까지 3일 내내 현지를 지켰다고 한다. 1961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충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소방에 입문했고 이후 단국대 행정학과 석사를 거쳐 충북대 행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