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 난임시술비 지원이 끝나 자비로 1회 시술당 400만~500만원을 감당해 왔습니다. 난임 치료에 건강보험이 된다기에 10월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연령, 횟수 제한이라니요. 게다가 기존 난임 시술 지원 횟수가 연계된다는 소식에 크게 좌절했습니다. 아이 낳아서 기르기 힘들다고 다들 낳지 않는다는 저출산 시대에 힘들어도 아이 낳겠다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주지 못할망정 이런 날벼락 같은 정책이 말이 됩니까.”(결혼 4년차 난임 부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최근 몇 주 새 이런 하소연과 비판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복지부가 이달부터 난임 시술·치료에 건강보험(본인부담 30%)을 적용하는 정책의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나서부터다.
1만4900여명 난임 건보 혜택 못 받아
정부는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인공수정(자궁내 정자 삽입술) 같은 난임 시술은 물론 그간 비급여였던 진찰·마취·초음파검사·약제 등 일련의 진료비용 대부분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난임 부부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체외(일반)수정의 경우 1회 평균 본인부담 진료비는 약 359만원(2016년 기준)에서 102만원 수준으로 3분의 2가량 줄어든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 나이를 만 44세 이하(아내 기준)로, 지원 횟수는 총 10회(체외수정 7회, 인공수정 3회)로 제한하고 저소득층 위주로 이뤄진 기존 난임시술비 지원 사업과 횟수를 연계키로 하면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기존 시술비 지원 사업의 횟수를 다 채우고 잔여 횟수가 남아 있지 않아 당장 이달부터 난임 시술에 건보 혜택을 못 받는 인원은 인공수정 기준 1만4981명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횟수 제한을 초과해도 난임 시술 외에 진찰·검사·마취 등 제반 진료비용은 건강보험이 그대로 적용돼 이전보다 부담이 낮아진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난임 시술엔 3배 넘는 비용을 환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건보 제한 정책은 아이를 포기하라는 것이고 저출산 시대 난임 환자들의 희망을 짓밟는 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난임 여성은 “제발 첫 아이만이라도 연령·횟수 제한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10일부터 전국 363개 난임 시술 의료기관이 서비스를 본격 재개하면 난임 환자들의 어려움이 현실화되고 반발 또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나이 제한 타당”…45세 이상 임신 위험
연령 제한과 관련, 복지부는 국내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 시술은 대상 연령이 증가할수록 임신율과 출생률(정상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자연 유산율은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본산부인과학회 2008년 연례 보고서를 보면 45세 이상에서 체외수정 시술에 따른 출생률은 1%에 불과했고 유산율은 70%에 달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체외수정 임신 성공률은 35세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44세 초과 시 3%에 불과했다. 출생률도 1%에 그쳤다.
국내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단국대 의대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송인옥 교수가 2004∼2011년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은 만 40세 이상 여성 1049명을 분석한 결과 만 43세가 넘으면 임신에 성공해 정상 출산할 확률이 3% 아래로 떨어졌다. 만 40세 임신율은 22.3%였고 41세 14.7%, 42세 11.8%, 43세 8.3%, 44세 6.8%였으며 만 45세 이상에서는 2.7%로 급감했다.
반면 자연유산 확률은 만 40세 31.6%에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높아졌고 만 45세 이상은 75%에 달했다. 국내 임신부 평균 유산율인 22.1%(2013년 기준)의 3배를 넘는다. 임신한 뒤 정상 출산율은 만 43세부터 3% 이하로 낮아졌고 만 45세가 넘어서면 0.7%로 급락했다.
송 교수는 9일 “40세가 되기 전에, 이미 40세가 넘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적어도 43세 이전에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아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해외에서도 난임시술비 지원 및 건강보험 적용 때 대부분 연령 제한을 두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는 산모 안전을 위해 나이 제한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40세 미만, 영국과 일본은 42세 이하,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45세 미만 여성에게 난임 시술 지원 및 건보 적용을 하고 있다.
난임 환자들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건보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아무리 가능성이 낮더라도 45세 넘어 임신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건보 적용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내년 1윌 만 44세가 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한 난임 여성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병원에서도 기피한다고 들었다. 남은 몇 개월 기껏 한 번쯤 시험관을 시도할 수 있을지도 미정이고 그나마 병원 눈치 보며 불편하게 한들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배덕수 이사장은 “보험 적용 연령을 기존 지원 사업과 동일하게 만 44세 이하로 제한한 것은 난임 시술 자체의 위험성이나 낮은 임신 성공률보다는 고령일수록 임신·출산 과정에서 유산이나 기형, 염색체 이상, 임신 합병증 등 여러 부작용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난자 채취를 위해 약제(과배란유도제)를 쓸 경우 난소가 붓거나 복수가 차는 난소과자극증후군 발생률이 20∼30%에 달한다. 자궁외 임신(체외수정 시 2∼8%, 인공수정 시 1%), 다태아(쌍둥이) 임신 확률도 커져 미숙아나 조산아 출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횟수 연계 제한’ 개선될 듯
시술 횟수 제한의 경우 정부는 한정된 재원을 바탕으로 하는 건강보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체외수정(신선배아 기준)의 경우 4회 시술까지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누적 출생률이 조금씩 높아지지만 5회 이후부터는 1회 추가 시술에도 누적 출생률 증가가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난임 환자별로 기존 시술비 지원 차수와 잔여 횟수를 세밀히 파악하고 있다. 임상적 안전성 등을 고려할 때 연령 제한을 풀기보다는 건보 적용 횟수를 늘리거나 기존 시술비 지원 횟수와의 연계를 개선·보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개선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난임 시술 출생아 수는 2006년 5453명에서 지난해 1만9736명으로 10년 새 3.6배 증가했다. 전체 출생아 가운데 난임 시술 출생아 비중도 같은 기간 1.22%에서 4.86%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배 이사장은 “가장 현실적인 저출산 문제 해법 중 하나가 난임 부부의 임신을 돕는 것”이라면서 “향후 건강보험 적용 횟수 상향 등 난임 치료 지원이 계속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And 건강] 난임 부부들 ‘2세 꿈’ 여전히 가물… 난임시술 건보 지원 나이·횟수 제한
입력 2017-10-10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