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추진에 합의했다. 이튿날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 수출로 자국 산업이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향후 자동차, 철강, 가전 등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리 주력 제품에 관세가 붙거나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워싱턴DC에서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개최한 결과 양측이 호혜성을 강화하기 위해 FTA 개정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8일 밝혔다. 우리 정부는 개정 협상에 앞서 한·미 FTA의 효과부터 분석하자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따라서 이번 개정 합의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한·미 FTA를 폐기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해석된다.
공식 개정 협상은 양측의 국내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에서 미국 측은 자동차, 철강, IT 등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집중적으로 지적할 가능성이 크다. 농업 분야에서도 미국 농산물이 한국에 들어올 때 붙는 관세를 철폐하자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 ITC는 “증가한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이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청원은 미 가전업체 월풀이 제기한 것으로, ITC는 위원 4명 만장일치로 ‘피해’ 판단을 내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공식 입장을 내고 실망의 뜻을 나타냈다.
ITC의 판단은 공청회와 ITC 표결, 대통령 권고 등 절차를 거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미 세탁기 매출이 연간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 정부는 2002년 이후 15년간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지 않았다.
ITC는 지난달 한국 중국 등의 태양광전지가 자국 산업에 중대한 피해를 줬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산업부, 외교부와 업체 관계자들은 11일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양국은 FTA 개정 절차 추진에 합의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며 “개정 협상이 시작될 경우 우리 측 개정 관심 이슈를 협상에서 반영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문동성 기자 keys@kmib.co.kr
FTA 개정 이어 ‘세이프 가드’ 만지작… 美 ‘협박 같은’ 통상 압박
입력 2017-10-09 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