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개정 협상 수순… 트럼프가 콕 집은, 車·철강 직격탄 예고

입력 2017-10-09 05:0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개정 협상 수순을 밟으면서 국내 제조업 및 농산물 분야의 피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콕 집어 언급한 자동차·철강을 비롯해 쇠고기 등 농산물 분야에서 미국의 압박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개정 협상에 앞서 기존 FTA 전략을 점검해 피해를 최소화하되 한국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동차와 철강은 미국이 기회 있을 때마다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분야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154억9000만 달러로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입(16억8000만 달러)의 9배를 넘어섰다. FTA 발효 이후인 2012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양국 간 자동차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미국(37.1%)이 한국(12.4%)을 넘어섰지만 전체 액수로는 여전히 큰 격차가 있다. 한·미 FTA가 개정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국내 생산도 축소될 수 있다. 닛산과 GM은 한국산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활용해 일부 차종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철강 분야는 FTA 체결 이전부터 대부분 무관세여서 FTA로 인한 혜택은 거의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자동차·철강 산업을 바탕으로 하고,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산 철강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반덤핑·상계관세를 더욱 엄격히 적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미 FTA 체결 협상 당시 한국이 방어하려 애썼던 농산물에 대한 즉각적인 관세 철폐를 미국이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미국의 경쟁국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유럽연합(EU)과 모두 FTA를 발효한 상태여서 관세 철폐 일정을 앞당기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호주보다 관세 철폐 일정이 2년 앞서는 쇠고기 분야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FTA 발효 전인 2011년 한국 시장 점유율이 38.9%였으나 지난해에는 45.3%로 1위 호주(48.0%)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지난 8월 열린 1차 한·미 FTA 특별회기에서 미국이 한국 농산물 관세를 당장 없애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미 FTA 개정에 따른 피해 추산 규모 역시 관련 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연평균 무역적자 증가액이 2억 달러 이상인 자동차 기계 철강에 한해 관세를 조정할 경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170억 달러의 수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미국 관세가 FTA 발효 이전 수준으로 올라갈 경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미 수출 총 손실은 13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개정 협상 자체를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줄 건 주되 받을 건 받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미 FTA가 호혜적인 협정인 만큼 서비스 농산물 투자 등 미국이 유리한 분야에 대해선 한국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對)미국 서비스 수지 적자는 FTA 발효 이전인 2011년 109억 달러에서 2016년 143억 달러로 늘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직접 투자가 90억 달러인 반면 미국의 대한국 투자는 8억6000만 달러에 그친 점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이동복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8일 “미국이 강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일부 요구를 들어주는 제스처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협상은 이익의 균형이 맞아야 정치적 타당성 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만큼 요구할 것은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미 무역 수지 흑자가 FTA 효과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도 지속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했던 2012∼2015년 증가했지만 관세를 철폐했던 지난해에는 오히려 감소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 대한 미국 내 반발 여론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존 머피 미 상공회의소 국제정책담당 수석부회장은 6일 트럼프행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에서 매우 위험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