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4일 오후 김모(28·여)씨는 네 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5년차 ‘싱글맘’인 김씨는 기나긴 연휴에 심심해하는 아이의 투정을 달래고자 밖으로 나섰지만 이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연휴를 맞아 다들 여행을 떠난 탓에 놀이터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네를 타던 딸이 “모두 어디 간 거냐” “우리는 아무데도 안 가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8일 “내가 미혼모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친정집에도 못 간 지 오래”라며 “아이와 둘이 지내는 데 익숙해졌지만 이번 연휴는 워낙 길어 좀 쓸쓸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부모님과도 화해하면 연휴 때 남들처럼 가족여행을 가보는 게 소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인 데다 올해는 최장 열흘간 쉴 수 있는 연휴였지만 미혼모들은 “길었던 만큼 더 외로운 연휴였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남편과 함께 시댁·친정을 방문하거나 가족여행을 떠나는 일은 이들에게 멀기만 한 얘기였다. 미혼모로서 당당하게 나서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친정집에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서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간호조무사 이모(31·여)씨도 이번 황금연휴가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한 시간”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씨는 이번 연휴 때 사흘만 쉬고 매일 출근했던 터라 돌보미에게 아들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출근할 때마다 아이는 엄마의 옷깃을 부여잡고 울며 “가지 말라”고 보챘다. 엄마는 즐거워야 할 명절이 아들에게 서러웠던 기억만 남길까 봐 연휴 내내 마음을 졸였다.
이씨는 “아들 친구들은 다 가족과 명절을 보낼 텐데 돌보미에게 맡기려니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하더라”며 “연휴에는 남편과 나눠서 아이를 보거나 시댁 친정에 맡기기라도 하던데 처지가 이렇다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을 위한 명절 캠프마저 이번 추석에는 예산 문제로 진행되지 못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는 2010년부터 설이나 추석 때 갈 곳 없는 미혼모들을 위해 무료로 명절 캠프를 진행해 왔다. 지난 설에는 미혼모와 자녀 50여명이 강화도에서 1박2일을 보냈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엄마들이 친정집 온 기분이라며 아이처럼 좋아했었다”며 “이번 추석은 다들 어떻게 보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은 가족의 가치가 강조되는 명절일수록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봄 혼자서 아이를 낳은 고모(31·여)씨는 이번 연휴 때 아이와 둘이서라도 외출해 보려 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명절 같은 때 아이와 둘이 식당에 가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아빠는 어디 갔느냐’ ‘할아버지 댁에 안 가느냐’고 물어본다”며 “괜히 상처받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부모가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가족’의 의미가 부각되는 명절에 더 큰 상처로 돌아온다”며 “궁극적으로는 미혼모를 일종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이재연 신재희 임주언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엄마, 왜 할머니댁 안가요”… 긴 연휴가 더 슬픈 싱글맘
입력 2017-10-09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