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사진)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 핵 문제는 오직 평화적인 수단으로만 해결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북한과의 전쟁’ 발언을 일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세상의 모든 전쟁과 학살은 타인을 ‘인간 이하(subhuman)’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한강은 ‘미국이 전쟁의 말을 할 때 한국인들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거론했다. 70대 남성이 전쟁이 터질까 우려해 은행에서 돈을 찾아 갖고 가다 잃어버린 일을 소개하며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외에서는 한국인들이 북핵 위협에도 멀쩡한 것 같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전쟁에 대한 걱정이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방공호 위치를 알아보거나 추석 선물로 생존가방을 선물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평정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인들은 북한 독재자와 그 밑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주민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조망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거 소설을 준비하느라 리서치를 한 적이 있는데 2차대전과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 등에서 학살이 자행된 이유가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전쟁 때 미군의 노근리 학살 사건도 마찬가지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한강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강조하는 한국을 향해 “그들은 한 가지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고 한 데 대해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평화가 아닌 그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전쟁론자들이 말하는 ‘승리’는 빈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인들은 지난해 촛불혁명처럼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길 원하고, 이미 그걸 현실화시킨 사람들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런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평화 이외의 다른 시나리오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지며 글을 맺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소설가 한강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인들은 몸서리친다”
입력 2017-10-0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