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억 VS 158억… 구로 농지 조작사건 피해자-국가, 손해액 산정 격론

입력 2017-10-09 05:01

대법원은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 피해자 유족 한모씨 등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을 지난달 말 민사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에 배당하고 상고이유 등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박정희정권이 구로공단 개발 명목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했던 이 사건은 최근 검찰이 유죄 피고인의 재심 청구를 결정하는 등 국가가 사실상 모든 과오를 인정했다. 하지만 1960년대 빼앗긴 농지의 가치를 2010년대에 따지면서 손해액 산정 시점과 방식을 둘러싼 쟁점은 여전한 상태다.

지난 7월 항소심 선고 때는 “국가가 158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뤄졌다. 이에 불복한 법무부는 “우리나라 화폐가치의 상승분을 고려해도 손해배상액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화폐가치 변동을 계산하는 공신력 있는 방법으로 1960년대의 피해를 오늘날에 따져 보면, 법원이 말하는 158억원은 과도하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이 제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쌀값 및 금값의 변동을 예로 들었다.

한은에 따르면 2015년에는 1965년에 비해 소비자물가지수가 36배, 쌀 가격은 48배, 금값은 122배가 됐다. 법무부는 피해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잣대가 될 금값을 기준으로 해도 법원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따졌다. 애초 토지가액 1889만6000원이 금값처럼 폭등해도 2015년 현재에는 1심 법원이 판단한 손해배상액의 14% 남짓인 23억147만여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돈은 토지의 개발이익에 해당되므로 감경돼야 한다는 논리다.

한씨 등 피해자 측은 과거와 현재의 국내총생산에 비춰 보면 법원이 판단한 손해배상액이 터무니없는 수준이 아니라고 맞선다. 피해자 측은 우선 1970년 서울 형사지방법원이 소송사기 범죄행위를 판결하며 인용한 시가를 근거로 자신들이 분배받은 토지가액이 2815만7443원이라고 환산했다. 이 가액은 1970년 당시 국내총생산(2조7948억원)의 0.001007%였다.

45년이 지나 2015년 1심 판결이 결정한 손해배상액은 158억8332만9378원이었다. 이 가액은 2015년 국내총생산(1558조5916억원)의 0.001019%다. 결국 1970년의 토지 시가든 2015년의 손해배상액이든 국가의 전체 경제규모에 비춰 보면 거의 동일한 수준의 가치라는 것이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개발이익이 공제돼야 한다는 법무부의 주장도 부당하다는 것이다.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은 과거사가 얽혀 있다는 점 외에 높은 소송가액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다수의 사건들이 계속 진행 중”이라며 “관련 사건들에 대한 통일적이고 모순 없는 처리를 위해 다소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구체적 답변은 피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