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 개정 ‘미치광이 전략’에 휘둘리지 말아야

입력 2017-10-08 16:59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통상압력이 전방위로 몰아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추석연휴 기간인 4일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다음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LG전자의 수입 세탁기 때문에 미국의 세탁기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LG전자 제품에 대해 관세 인상과 수입량 제한 등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산 철강·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판정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 피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는데도 안일하게 대응한 정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통상압력이 한층 높아질 것은 예고된 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때부터 “끔찍한 협상” “재앙”이라며 한·미 FTA 재협상이나 폐기를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재협상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8월 한·미 FTA 1차 특별공동위원회를 국내에서 열면서도 한·미 FTA 성과를 먼저 따져보면 미국 측 요구를 무마할 수 있다며 허장성세를 부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한·미 FTA 재협상이나 폐기 발언은 북핵 공조와 자국 자동차·철강 업체들을 달래기 위한 엄포로만 여겼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 서한까지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블러핑(엄포)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뒤늦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알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상대국의 의도를 분석하는 게 엇나갔으니 대응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공청회, 국회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FTA 개정 협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자동차·철강 분야 외에도 농산물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이에 맞서 내줄 것은 내주되 받을 것은 확실하게 챙기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는 서비스 부문이나 우리에게 불리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고칠 필요가 있다. 북핵 공조를 위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안보 문제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우리 입지를 좁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여야는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국익을 최우선해야 한다. 과거의 행태를 비판하며 ‘당해보라’는 식으로 무조건 협상에 어깃장을 놓는 것은 곤란하다. 한·미 FTA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됐던 지난 몇 년을 다시 반복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안보와 통상 위기가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