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가즈오 이시구로 수상의미· 문학세계

입력 2017-10-08 17:27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대형 서점 특별코너에 진열돼 있다. 뉴시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사진)는 다섯 살 때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켄트대와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뒤 런던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30대 중반에 이미 소설 ‘남아 있는 나날’(1989)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이시구로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건 지난 2년간의 수상자를 고려할 때 ‘전통으로 회귀’로 볼 수 있다. 지난해 팝가수 밥 딜런, 2015년엔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이 상을 받아 문학의 의미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시구로는 올해 유력 후보로 거론되진 않았지만 현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기억, 시간, 자기기만’을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1982)은 영국에 사는 중년 부인이 전후 일본에서 본 황량한 풍경과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제된 감성으로 담고 있다. 두 번째 작품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는 전쟁 중 선전예술에 가담했던 화가의 얘기다.

가장 유명한 ‘남아 있는 나날’은 영국 귀족의 장원에서 집사로 평생을 살아온 한 남자의 회고를 통해 1930년대 가치관이 붕괴되던 영국의 격동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억의 왜곡과 역설을 보여준다.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1993)로도 제작돼 호평을 받았다. 일찍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후 펴낸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과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는 부커상 후보작에 올랐다. 이시구로는 1인칭 화자 시점을 선택해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리면서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왔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작가다. SF 형식을 도입한 ‘나를 보내지 마’(2005)는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돼온 클론들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도 영화(2010)로 만들어졌다. 이시구로는 “13세 이후 밥 딜런은 나의 영웅”이라고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녹턴’(2009)에는 그런 음악 애호가의 면모가 담겨 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와 작사가로도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 드라마 ‘아서 J 맨슨의 프로필’(1984)과 ‘미식가’(1986), 뮤지컬 영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2003), 영화 ‘화이트 카운티스’(2005)의 대본을 썼다. 유명 재즈가수 스테이시 켄트의 앨범 ‘출근 전차에서 아침을’ 작사에도 참여했다. 이 앨범은 2009년 그래미상 후보작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 대해 “이시구로는 놀랍도록 정서적인 힘을 가진 그의 소설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우리의 불가해한 감각의 심연을 드러낸다”고 평했다. 국내에는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이상 민음사) 등 다수가 번역돼 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그의 책은 주요 서점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