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모(37·여)씨와 친구 2명은 이번 추석연휴 기간 7박8일 일정으로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 월요일인 지난 2일은 당초 휴가를 내기로 했지만 임시공휴일 지정 덕분에 부담을 덜었다. 지난해 일본을 함께 다녀온 이들이 파리 여행을 계획한 것은 지난 1월. 일찍 구매한 덕에 파리행 왕복 비행기 표를 80만원대에 싸게 구입했지만 이들이 지출한 여행 경비만 1인당 200만원이 넘는다. 일해서 번 돈의 상당액은 그렇게 해외에서 소비됐다.
8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열흘간의 황금연휴 기간 100만명이 넘는 국내 거주자가 해외여행을 떠났다. 김씨 일행처럼 미리 표를 구매한 ‘얼리버드(Early Bird)족’과 임시공휴일 지정 소식에 부랴부랴 여행 계획을 짠 이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해외여행 증가는 황금연휴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계절별 특성을 배제한 실질적인 ‘국외 소비지출’은 분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최대 20.3%까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외 소비지출은 해외여행과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구(직접 구매) 등 국내 거주자가 해외로 지출한 돈을 말한다.
국외 소비지출은 2015년부터 증가세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2015년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7.2% 늘어난 6264억1000만원을 기록한 뒤 4분기 연속 1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주춤했지만 올 들어 다시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해외 소비가 가계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전체 소비지출에서 국외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초중반대였다. 하지만 2015년 3분기에 4.2%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4%대에 진입했다. 이후 3.9∼4.7% 사이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올해 2분기 내국인이 해외에서 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41억8300만 달러(약 4조7267억원)로 집계됐다.
부쩍 덩치를 키운 해외 소비는 내수와 달리 불경기도 없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 소매판매액지수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전년 동기 대비 2.4%에서 6.3%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당시에는 국내외 소비가 동반 성장했다. 반면 경기 침체 국면의 양상은 달랐다. 올 1,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9%, 1.7% 증가에 그쳤다. 반면 같은 시기 국외 소비지출은 각각 14.5%, 11.8% 늘었다. 올 3분기 국외 소비지출 역시 증가가 예상된다. 지난 7∼8월 출국자 수는 역대 두 번째 규모인 238만5000명을 기록했다.
해외 지출이 늘자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소득주도’로 잡은 정부는 좌불안석이다. 정부는 개인의 소득을 늘려주면 그만큼 지출이 늘고, 내수가 활성화돼 기업이 성장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그 과실이 다시 개인에게 돌아가 선순환하는 경제성장 모델을 구상한 것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과실이 엉뚱하게 해외여행 등 국외 소비로 흐를 가능성을 간과했다. 국외 소비지출 증가 추이에서 보듯 ‘소득 증가=내수 활성화’란 기대 수위도 낮아진 상황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지난달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지출 우려에 공감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수입 늘어난 개인, 해외서 펑펑… ‘소득주도 성장’ 복병되나
입력 2017-10-09 05:01